구미에서 상주까지 (40)
필자는 2015년 가을부터 배위량 선교사의 흔적을 찾아 그가 1893년 봄에 선교를 위해 다녔던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으면서 한 분, 두 분 함께할 동역자를 찾는 일을 하고 있다.
상주 낙동에서 상주까지의 길은 1893년 봄에 배위량이 걸었던 영남대로 길을 걷지 않고 낙동강을 따라 상주 경천대까지 걸었다. 배위량이 걸었던 영남대로를 찾는 일이 쉽지 않은 탓도 있지만,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서 강이 주는 영감을 놓치기 싫었고 뭐가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치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동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새벽 일찍 컵라면으로 아침 요기를 한 후 배낭을 짊어지고 낙단보를 둘러보면서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슴에 깊이 받아들이면서 새벽녘의 낙동을 지나 경천대를 향하는 길은 그동안 눌려 있었던 가슴을 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굽이굽이 돌아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 물은 말없이 걷는 나그네의 심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없이 다가와서 동무가 되어 주었고 함께 노래를 하고 함께 기도를 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안동까지 걸을 때 필자는 영남대로길을 따라 걷지 않고 나름의 길을 찾아 걸었다. 그 당시 필자가 몸담았던 영남신학대학교 배위량 순례동아리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학생들이 그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의미를 찾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대구제일교회의 대구기독교역사관(옛 대구제일교회: 필자 주: 배위량이 자비로 구입한 영남지역 선교의 터전)에서 동촌에 있는 해맞이 공원까지 걸었다.
그리고 해맞이 공원에서 금호강을 따라 팔달교까지 걸었다. 팔달교에서 칠곡군 동명까지는 팔거천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샛길로 빠진 후 다시 동명까지 갔다. 동명에서 구미시 인동까지 가는 길은 묵상의 길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 로맨틱한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거대한 무덤 지역을 지나면서 인간의 삶을 돌아 볼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요술고개를 지나면서 그리고 아름다운 산길과 들길 그리고 낙동강 강변길을 걸으면서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잘 붙들어 두면 누구든 시인도 되고 사상가도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미 인동에서 낙동까지의 길은 낙동강 동쪽 제방을 따라 걷는 길인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서울서 부산까지 무리지어 달려가는 자전거 여행객들을 만나면 반갑고 또 반가워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면서 무료함을 달래며 강물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걷게 된다. 그렇게 걷다보면 어둑한 저녁노을을 받으며 낙단보가 있는 낙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필자가 2015년 여름 스페인에서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때로는 묵상하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걷기도 했고, 때로는 가파른 언덕길, 외롭고 힘든 산길을 걷기도 했고 어둑한 밤길을 등불도 준비 못한 가운데, 걷기도 했고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사막 길을 어떤 때는 녹아날 것 같은 무더위 속에서 걷기도 했다.
필자의 생각에 산티아고 길은 고착된 ‘죽은 길’이 아니라, ‘살아있는 길’이다. 그 말은 고착된 옛길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막히면 걷기 좋고 아름답고 묵상할 수 있고 의미있는 길을 찾는데서 무한한 상상력과 생동감과 경건함을 더하면서 의미를 찾게 한다.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필자에게 산티아고 길은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걷고 난 뒤에 그런 길을 한국에서도 찾고 싶었던 필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던 것은 1893년 4월부터 5월까지 약 한 달간 배위량이 걸었던 그 옛날 그 시절의 옛길이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그 시절에 배위량이 다녔던 바로 그 길을 모두 찾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고 그 길을 걸으면서 배위량이 길 위에서 어떤 생각을 했고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지가 궁금했다.
낙동에서 경천대까지 걷는 길은 낙동강을 따라 걷는 평지길이 주로 이어지지만, 심심찮게 고갯길도 있고 가끔은 산길도 있어 지루하지가 않다. 시간만 되면 그 근처 명승지와 옛 유적들을 보고 갈 수도 있다.
먼저 낙동에 있는 낙단보를 둘러 볼 수 있다. 필자는 이미 여러 주간 이전에 낙단보에 대한 글을 썼기에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낙동에서 강 맞은편 의성군 단밀면에 있는 옛 낙정나루터를 굽어보고 있는 관수루를 돌아보고 다시 낙단보를 통과하여 상주 땅으로 들어와 낙동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낙동강역사이야기관이 있다. 낙동강 굽이굽이 얼마나 많은 역사 이야기가 있겠는가? 만약 자녀와 함께 낙동 지역을 방문한다면 낙동강역사이야기관을 들러 잠시 머물게 되면 아이들에게 꿈과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한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낙동강을 따라 걸어가면 경천섬이 나타나고 그 근처에 도남서원(道南書院)이 서 있다. 경천섬은 중동면 오상리에 있는 타원형으로 형성된 섬이다. 아름다운 경천섬 강 건너 기슭에 서 있는 도남서원은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동에 있는 서원으로 1606년(선조 39)에 건립된 뒤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다가, 1992년에 다시 복원된 서원이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상주자전거박물관이 나온다.
이곳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워 줄 수 있는 곳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전거가 오락을 위한 도구이거나 운동 기구에 불과하겠지만, 어떤 이들에게 자전거가 생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전거가 귀했던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 꽁무니를 따라 뛰어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자전거 따는 사람이 얼마나 잘나 보이고 대단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당시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지금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잘나 보이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두 살 아래 동생이 가장 먼저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그것은 부모님께서 십리 밖에 있는 중학교에 다녀야 하는 동생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사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주자전거박물관을 방문하게 되면 옛 추억을 새롭게 하는 다양한 자전거가 있어 그것들을 통하여 다양한 인생살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배재욱 교수(영남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