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삶의 현장] 아리랑 술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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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리랑」 술집을 다시 들르게 되었다. 1966년 전후해서 EWC를 다녔던 학생치고 「아리랑」 술집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와이에 있는 한국 술집이었다. 이 술집은 호놀룰루에서도 한국식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곳이어서 미국 사람들도 이국적인 정취를 맛보기 위해 이 술집을 찾아드는 사람이 많았다. 맥주를 주문하면 푸짐한 안주를 내놓는 곳이었다. 그뿐 아니라 여자들이 옆에 바짝 다가앉아 술 시중을 들었다. 여러 테이블을 맡아 술 시중을 들기 때문에 한자리에 계속 앉아 있지는 못했지만, 단골손님이 오면 좀 오래 머물러 앉아 이야기를 주고 나누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이 술집을 찾아드는 미국 애도 있었다. 그러나 감질나게 앉았다 떠나는 여종업원 때문에, 한 미국 애는 5분 앉아 있으면 5불, 10분 앉아 있으면 10불을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던 녀석은 드디어 영원히 그의 곁에 앉아 있을 여자를 하나 구했다. 그는 한국 여자와 결혼한 것이다. 이곳 술집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대개 미군들이 한국에서 같이 살다가 결혼해서 귀국하면서 하와이에 들러 떼어놓고 가버린 여자들이었다. 미국 군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부인을 학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여자는 얻어맞다 못하여 한국 영사관을 전화로 불러 놓고 전화를 못 마치고 기절한 때도 있었다고 한다. 배운 것 없고 말이 서툴기 때문에 설거지나 청소 도우미보다는 일이 편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술집으로 흘러들었다. 그녀들은 돈은 많아서 학생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급 차들을 몰고 다녔다. 새벽녘에 영업을 마치고 가슴에 또는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팁들을 정리하여 집으로 갈 때는 거의 위험 수준의 음주 운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들은 “까짓 인생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큰소리를 쳤다. 음주 운전하다 경찰에 걸리면 내려서 껴안고 멋있게 키스해 주면 황홀해서 그냥 보내준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전주에서 온 은 선생 때문에 이곳을 잘 드나들게 되었다. 그는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뽐내며 담배를 피우는 멋쟁이였다. 그 파이프에서 올라오는 연기와 그 향기는 온 방을 가뜩 메웠다. 그런데 그는 부부간에 불화가 심하였다. 그럴 때면 그는 언제나 저녁이면 나를 불러 그의 바이크(오토바이) 뒤에 나를 싣고 이 「아리랑」을 들렀다. 그는 여기저기 교제하는 사람도 많아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방송국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나더러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을 줄 테니 30분간 방송을 맡아 주면 안 되느냐고 말했다. 왜 자기가 하지 않고 나에게 부탁하느냐고 묻자 자기는 떠날 때가 다 되어 곧 그만두어야 하고 나는 소설을 쓴다니 재미있게 고전 문학이나 전통 음악 등을 들려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말로 방송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나는 얼마 동안 그것을 맡아 했는데 음성이 좋지 않아 별 인기가 없었다. 그는 곧 떠나야 한다며 나에게 그가 타던 바이크를 팔았다. 싼값이어서 내가 떠날 때 되팔아도 이익이 남을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바이크 때문에 내 룸메이트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모른다. 은 선생은 밤마다 나를 술집에 불러내더니 귀국하기 전에 기어이 바이크까지 나에게 팔고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내 룸메이트는 나더러 나도 곧 귀국해야 할 사람이 왜 위험한 바이크를 사느냐고 한숨을 몇 번씩 내쉬며 말했다. 당시 EWC 학생은 두 종류가 있었는데 나처럼 스트레스를 풀러 술집에 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코 술집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집에서 밥하고 국을 끓여 먹어서 외국인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돈을 조금이라고 아껴 한국에 가져가려는 학생이었다. 당시 한국의 국민 소득은 125불인데 매월 공동체에서 교제하며 살라고 주는 생활비는 150불이었다. 이 돈을 2년간 아껴서 돌아간다면 3,600불을 가져갈 수 있다. 국민 소득 36,000불의 미국에서 핀잔을 받으며 인색하게 살아야 하는지 장학금의 목적대로 교제하며 쓰고 가야 하는지는 적지 않은 갈등이었다.

오승재 장로 

•소설가

•한남대학교 명예교수

•오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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