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시절에는 필요를 채우기 위해 서로가 협력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먹고 살만해지자 지체들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상대방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지체들의 회의가 소집되었다. 발언권을 얻은 <코>가 일어나 <입>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여기 모인 여러 지체들이 제각기 수고하여 주인을 섬기고 있는데, 놀고먹는 작자가 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먹고 싶은 음식은 혼자서 먹는다.” <발>이 거들고 나셨다. “나도 <입>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주인이 무거운 몸을 끌고 하루 종일 뛰어 다니다 집에 오면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다. 내가 이렇게 힘들까에 대해 생각을 해 보니,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입>은 혼자서 너무 많이 먹고 있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손>이 일어섰다. “<입>의 행태를 직시해 보자. 먹을 것이 있으면 스스로 먹을 수가 있다. 개들도, 닭들도, 소들도 그렇게 먹는다. 그런데 <입>은 허구한 날 먹을 때가 되면 나에게 이것을 입에 넣어라, 저것을 입에 넣어라 명령한다. 먹고 싶으면 지가 먹을 것이지 실컷 먹고 나서도 이빨을 쑤셔라, 이빨을 닦아라, 건방지기 짝이 없다.” 가만히 있던 <눈>이 말했다.
“여러분! 성토만 할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자. <입>에 관해서 파업하고 농성을 할 수 있는 평등법을 제정하자.” 압도적인 다수결로 평등법이 제정되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힘 빠진 <손>은 늘어지고, <발>은 후둘후둘 떨렸다. <눈>은 가물가물 앞이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것 냄새를 맡고 미칠 지경인 <코>, 환각이 보이고 환청이 들렸다. 견디다 못한 <입>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러다간 우리 모두 함께 죽게 된다. 나 혼자만 먹는다고? 아니다. 나만을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다. 먹는 일은 몸 전체를 위해서 나에게 맡겨진 일일 뿐이다. 섭섭하다고, 서운하다며 초가삼간을 태워서는 안 된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은 성실히 하다보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역할을 통하여 선을 이루신다.”
이 우화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격언과 분업으로 인한 ‘보이지 않은 손’에 대한 성찰도 담겨 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자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자기 자리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다. 당나라의 선승 임제(臨濟) 선사의 수처작주 (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을 이렇게 해석해 보았다.
‘머무른 곳 마다 주인이 되면 매 순간 마다 진실하다. 진정이 통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이다. 이 말씀의 주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의 유익을 구하게 된다. 거듭남을 통하여 복음의 통로로 변화된 이들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지 않고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는 자기 자리의 주인이 된다. 주인이 됨으로 세상을 유익하게 만든다.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