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 수록 더 넓어지는 사람이 있고 더 좁아지는 사람이 있다. 그 중간에서 아무 변화가 없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지는 사람은 평화를 만들 수 있게 되지만, 동일한 경험일지라도 더욱더 자기 중심적이 되어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툼의 근원이 될 여지가 다분하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시야가 좁아지는 사람을 가리켜 속칭 ‘꼰대’라 할 수 있고, 넓어지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이와 경험이 많다고 ‘어른’이라 말할 수 없고 그 시야가 넓고 다른 이를 얼마나 포용하는가에 따라 어른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현상은 믿음이 있다고 하는 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믿음의 연조를 자랑하는 이들에게서 매우 시야가 좁고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믿음을 토대로 자기 주장을 피력하고 어떤 강력한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고집인 경우가 많다. 스스로 자신은 믿음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 안에 있는 고집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믿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인격을 의지하는 것이고, 고집은 자신의 인격 안에 믿음을 두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음은 예수님께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의탁하는 것이고, 고집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실행되는 많은 일들이 얄팍한 인간들의 고집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믿음은 강해질수록 자기를 더욱더 부인하지만 고집은 더욱더 자신을 강화시킨다.
믿음과 고집이 처음에는 분별하기 어려운 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떤 고난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고 희생을 마지 않는 모습은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갈수록 다른 열매를 맺는다. 믿음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화평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지만, 고집은 다툼과 분열 속에서 고착화를 일으킨다. 믿음은 많은 사람들을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힘이 있지만 고집은 많은 사람을 진리로부터 멀리 떠나게 한다. 이 시대에 참된 믿음의 사람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오랫동안 익숙한 교회 문화를 고수하는 고집을 믿음으로 여기고 고집을 더욱더 강화시킨 결과 교회는 이 시대의 ‘꼰대’처럼 사회에 비취고 있다. 고집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집을 내려놓고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 누구가 대신 해줄 수 없는 믿는 이들 각자의 몫이다. 오늘 나의 삶의 원리가 ‘믿음인가 고집인가’ 되묻는 것은 매일 반복해야 하는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의 질문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