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新書)’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초나라의 어떤 어부가 임금에게 물고기를 바치며 말했다. “오늘 잡은 물고기가 많아 다 먹어 치울 수도 없고 다 팔아 치울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그냥 버리자니 아까워서 임금님께 바치고자 합니다.” 그때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분하여 말했다. “그 말이 참으로 무엄하구나.” 그러나 임금이 신하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그대들은 이 어부가 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소. 듣자 하니 곡창에 곡식이 남아 돌면 백성이 굶주리게 되고, 궁궐에 궁녀가 넘쳐나면 넉넉하지 못한 백성 가운데 홀아비가 많이 생기게 되며, 재물을 쓰지 않고 나라의 창고에 쌓아 두기만 하면 백성 가운데 가난한 자가 늘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임금의 도리를 잃는 것이라 하오. 그러니까 궁궐의 부엌에 살진 물고기가 남아돌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넘치면 백성은 굶주린 기색을 숨길 수 없게 되는 법이오. 이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임금은 국고 안에 재물을 가득 쌓아 둔다는 말이 생긴 것이오. 과인은 이 말을 들은 지가 오래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소. 어부가 그것을 알고 지금 비유를 통해 과인을 깨우쳐 준 것이니 당장 실천에 옮겨야겠소.”
임금은 곧 관리들을 보내 홀아비와 과부를 돌보고, 고아와 홀로 사는 노인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국고에서 곡식과 돈과 옷감을 가져다가 풍족하지 못한 자들을 도와주고, 임금을 직접 모시지 않는 후궁들을 모두 내보내 홀아비의 아내가 되게 하였다. 이에 초나라의 백성들은 크게 기뻐했고, 이웃나라에서 초나라로 귀속해 오는 자들도 많아졌다. 초나라의 비천한 한 어부가 물고기를 바치면서 불손하게 한 말은 남아도는 재물을 베풀지 않고 마냥 쌓아 놓았던 임금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것이다.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면 부족한 것이라도 아낌없이 베풀고 나눌 줄 알아야 하는데, 하물며 남아도는 것을 쌓아 두고 나누지 못하는 나라님의 인색한 마음은 망국의 지름길이라는 말이다.
내가 잘되는 것은 언뜻 보기에 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남에게 달려 있는 부분이 많다. 남이 내 능력을 알아줘서 일을 시키고, 나의 물건을 좋게 평가해서 사 줌으로써 잘 되는 것이다. 부족한 것이라도 서로 나누어 써야 마땅한데 남아도는 것을 꽉 붙들고 있음으로써 옹색하다는 평을 듣고 사람들이 멀리하는 존재가 되곤 한다.
또한 무엇인가를 베풀면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아직 부족한 것을 나눌 때가 아니라면 적어도 남아도는 것만이라도 베풀어야 한다.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 나눔의 원리이다. 그러면 뜻밖에 더욱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시 112:5-6)라고 하였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1-2)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라고 하였다. 이 모든 말씀들이 베풀고 나누는 일의 선한 결과를 분명히 알려 준다.
록펠러는 한때 돈을 모으는 데만 보람을 느꼈던 사람이다. 그러는 중 어느 병원에서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를 돕게 되었고, 그 환자가 조금씩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기쁨과 감격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쓰겠노라 다짐하며 평생 자선을 베풀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아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고, 지금도 뉴욕 사람들이 물을 공짜로 먹을 수 있도록 재단에서 수돗물 값을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나는 사는 동안 물질적으로 여유는 없었다. 가장 어려운 학창 시절에는 13원의 밥값이 없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산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기도했다. 졸업하고도 넉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어디를 가든 월급을 받거나 수입이 발생하면 십 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고 십 분의 이, 삼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기로 하나님께 약속을 했다. 나는 평생 십일조를 해 본 적이 없다. 얼핏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십이조, 십삼조를 드리며 살아왔다. 나는 굶주릴 때 하나님과의 이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이렇듯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 나에게 돌아온 것은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아무것도 없던 빈 항아리 같았던 나에게 가정과 자녀를 주셨고, 고독한 나에게 믿음의 아들딸을 주셨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영적 부모님들도 주셨다. 또 우리 가정에 박사, 석사 그리고 음악적 재능으로 영광을 돌리는 자녀들을 주셨으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무것도 없던 나에게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을 주셨다. 그래서 늘 ‘주신 복을 세어 보아라’라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나를 위해 만드신 찬송이라고 생각되어 감격으로 찬양한다.
이 모든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에게 베풀었기에 나에게 주신 축복이라 생각한다. 주는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신실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나는 늘 베풀면서 내게 더 많은 것을 공급하실 아버지 하나님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성서에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은 나에게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