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金炳宇)는 1879년 안동군 풍천면 어담에서 출생했다. 당시 그는 어담의 안동 김씨 가문에서 혼자 예수를 믿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어떤 경로로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문중 사람들은 그를 몹시 핍박했다고 전해진다. 후손들의 전언에 따르면 문중 사람들이 두꺼운 밧줄로 집을 꽁꽁 묵은 후 잡아 당겨 집이 무너지는 등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어 1902년, 가까운 거리의 풍산면 소산 2리로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도 안동 김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던 동네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7년 동안 친척들의 냉대를 받다가 1909년경 안동 읍으로 이사했다.
그는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집안 사람들과 헤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이처럼 식구들이나 문중을 버리면 버렸지 예수를 버리지 않은 신앙의 1세대들은 허약한 믿음을 가진 오늘의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경북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의와(安義窩, James E. Adams) 선교사는 현재 안동교회 건너편에 5칸 초가집을 구입해 기독서원으로 사용하면서 매서인 김병우에게 운영토록 했다. 이 기독서원은 안동읍 최초의 교회인 안동교회의 첫 예배처소가 됐다.
당시 선교사들에게 인정받는 매서인이었던 김병우는 1909년 8월 8일에 있었던 안동교회 첫 예배를 인도하는 감격을 누렸다.
예배를 드리려고 계획하고 있던 안동읍의 자생적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인도할 사람을 찾던 중 김병우가 예수를 믿은 지 오래 되었고, 매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913년 7월 20일, 안동교회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장로 임직식을 거행했다. 김병우의 장로 장립은 안동교회 최초일 뿐 아니라 안동지역 최초였다.
김병우 장로 임직 결과 안동교회는 안동지역에서 최초로 당회를 조직할 수 있었다.
특히 안동의 기미년 3·1만세운동에서 김병우 장로는 모의 단계에서부터 시위 현장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결국 그는 비교적 무거운 형량인 2년형을 언도받았다.
또한 그의 차남인 김재성도 6개월형을 언도받음으로써 부자(父子)가 모두 만세운동으로 투옥됐다. 교회에서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도 희생을 아끼지 않은 이들의 헌신은 몸을 사리며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안동교회 초대 장로요 안동지역의 첫 장로인 김병우는 1936년 2월, 57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안동지역에서 누구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초대 교인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생명을 걸고 예수를 믿은 믿음의 선배였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몸이 부서질 정도로 교회를 사랑한 충성스러운 교인이었다.
그리고 3·1만세운동 당시 나라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가 투옥당한 애국자로서 안동지역의 성도들과 시민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김승학 목사
<안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