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가득한 요즈음 샛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벚꽃 그리고 새하얀 목련이 한창이다.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간 집안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동안 창밖으로 바라보는 봄풍경이 더욱 눈부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격리가 끝나는 날 기다렸다는 듯이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가 이 아름다운 봄날의 화사함을 마음껏 즐기는 자유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가운데 따사로운 햇볕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발길 가는 대로 휘휘 몸을 맡기는 여유는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날 내친김에 아내를 재촉해서 양재동 꽃시장으로 달려가 수선화를 비롯해서 작약, 목단, 하늘매발톱, 영춘화 등을 잔뜩 구입해서 양평 텃밭으로 향했다. 사실 그동안 도심에 살면서 평생 흙을 만져본 적이 없는 필자가 이렇게 용감하게 꽃을 심을 마음을 낸 것도 순전히 코로나 격리 덕분이 아닐 수 없다.
내 딴에는 꽤 많은 양의 식물을 다양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심고 보니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아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반나절을 흙과 씨름하면서 심은 식물들이 대견하고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힘든 노동 끝에 허리를 펴고 주위를 바라보니 온 사방이 나무와 꽃과 풀들로 가득한데 대자연의 이 많은 생명을 심고 가꾸고 기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리의 옛 선조들은 자연을 벗하여 살기를 좋아하여 세상일을 마치면 예외없이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초당을 짓고 자연을 사랑하며 늘 그 속에 머물기를 꿈꾸었다. 우리나라 선비정신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은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으로 돌아온 감회를 도산십이곡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당시에 예던 길을 몇 해를 버려두고
어디가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온고
이제야 돌아오나니 딴 데 마음 말리라
도산십이곡은 퇴계 선생이 자연 속에서 학문하는 즐거움을 노래한 우리말 시조 열 두편을 말한다. 그 중 몇 편을 더 소개해 보자.
봄바람에 꽃이 산을 뒤덮고
가을밤에 달은 누각에 차는구나
네 계절의 흥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천지조화의 오묘함이야 어느 끝이 있으리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그치는 일 없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자연을 사랑하고 학문을 즐거워하며 인격의 도야를 삶의 근본으로 삼았던 옛 선비의 정신이 퇴계의 이 시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도산서원 앞에 있는 바위에는 붉은 글씨로 경(敬)자가 새겨져 있는데, 거경궁리(居敬窮理)의 정신이 이 한 글자에 표현되어 있다고 하겠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표어, 경건과 학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정신이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에게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봄날은 짧다. 아름다운 꽃도 곧 지고 그 자리에는 푸르른 녹음이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는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경건함이 영원히 피어있을 것이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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