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카톡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이근복(李根福, 1953~ ) 목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목사는 1960년대 후반, 내가 신일중고등학교에 부임하여 사제의 인연을 맺은 자랑스런 제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경애하는 은사님, 사순절에 십자가 은총이 풍성하시길 간구합니다. 제가 교회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고자, 주로 100년 이상 된 72개 교회를 ‘뉴스엔조이’에 지난 3년 반 동안 연재한 그림과 글이 ‘태학사’에서 책으로 나옵니다. 부족한 책이지만, 나오는 대로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소를 부탁드립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출판기념회가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간구합니다.”
서둘러 카톡으로 내 주소를 이 목사에게 보낸 지 며칠이 지나자, 매우 소중하고 특이한 책 한 권이 도착하였습니다. 정사각형으로 제본된 250면에 달하는 책이었지요. 책의 제목은 『그림: 교회, 우리가 사랑한』이었습니다. 영어의 어법에는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뒤에 오도록 규정한 관행적인 용법이 몇 가지가 있지만, 우리말 어법에는 형용사가 명사를 후위(後位) 수식(修飾)하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책의 제목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지요.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책을 받고나서 나도 고맙다는 답신을 보냈습니다. “이근복 목사, 보내준 귀한 책자를 잘 받았습니다. 글도 훌륭하지만 펜으로 그린, 사진 같은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고 감동적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 책자에 대한 내용을 한국장로신문 “신앙산책”칼럼에 소개하고 싶네요. 귀한 책 출간을 축하합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섬세하고 멋진 그림에 감탄하여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미술을 전공하신 韓某 권사님을 통해서 《어반 스케치(Urban Sketch)》라는 새로운 기법에 관해 들은 일이 있습니다. 펜이나 붓이나 연필 등으로 도시의 건물이나 풍경을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목사의 그림이 바로 ‘어반 스케치’ 기법이어서 반가웠습니다.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한 교회건물과 주변 산야(山野)가 모두 살아서 움직이며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교한 돌담에 둘러싸인 한옥 교회인 ‘금산교회’가 매우 낯이 익었습니다. 이 교회는 내가 전에 방문했던 교회여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우리 장로교 통합 교단의 전설이 되신 이자익(李自益, 1879~1958) 목사의 일화가 서려있는 교회이지요. 이자익이 머슴의 신분으로 극진히 섬겼던 김제지방의 최고 갑부 조덕삼(趙德三, 1867~1919)과의 장로투표에서 나이도 12세 연상이요, 신분이 하늘과 같았던 주인을 제치고 먼저 장로가 된 감동적인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일화입니다. 숲속에 포근히 안긴 아담한 교회들, 특히 복음사역에 긴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교회 앞의 거송(巨松)들이 생명력 넘치는 활력을 뿜어내는 듯하였으며 동시에 이 목사의 예술혼이 그곳에서 숨 쉬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한국 기독교역사에서 100여년에 걸쳐서 일정한 역할을 감당했던 72개 교회의 전경을 붓-펜 담채화로 담아내는 작업은 작품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없이는 작업이 불가능할 것이므로 이 목사가 추구하는 작품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미루어 유추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회복과 부활의 모범인 청파교회, 민주노동운동의 보금자리라 할 수 있는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성문밖교회, 민족 독립의 선구자 경북 봉화척곡교회, 기독정신의 구현으로 대표되는 연세대학교회 루스채플, 2,000년의 고도(古都) 경주에 든든하게 서 있는 경주제일교회, 마을공동체와 하나가 된 홍천 도심리교회, 믿음의 고향을 지탱해주는 당진의 거산교회, 산촌의 옹달샘 같은 경남 함안의 사촌교회, 인간과 하늘을 잇는 통로의 상징 대전제일교회 등을 일별(一瞥)해 보면서 이 목사의 창의적이고도 집중력 있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이근복 목사는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 신학대학교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지난 4월 21일 종로 연동교회 교육관에서 조촐하고 뜻 깊은 출판감사예배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귀한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입니다.
[태학사 출간/ 연락처: 031-955-7580]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