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이 되어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된 나의 학교에 신임 교장이 부임하였다. 운동장에 모인 전교생 앞에는 무척 키가 크고 마치 영국 신사처럼 생긴 멋쟁이 선생이 있었으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취임사를 했는데 내용은 상당히 좋았지만 꽤나 길어서 앞으로의 학창 시절이 그리 만만치 않으리란 예감이 들게 하였다. 그리고 그 후로는 어김없이 매주 한 번 수업시간 전에 있는 조회 시간에, 약간은 길기도 하고 때로는 중복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꽤나 영양가있는 말씀들을 해주곤 했다. 따라서 그가 말하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내용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준비한 내용들이라, 우리들 어린 젊은이들이 간직할 이야기들이 몹시 많았다. 이에 감동을 받은 나는 그 말씀 중에서 몇 가지는 메모하여 다시 읽으면서 가슴에 깊이 간직하였고, 또한 일생동안 실천하게 된 것들도 상당하였으며, 그 말씀을 따름으로 내 인생관이 건전하게 이루어졌다고 여기면서, 그 가르침을 항상 감사하게 여긴다.
이렇게 내가 평생 존경하는 선생님은 1904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고 평양에서 수학한 김원규 선생이다. 해방 후인 1946년에 일본 고등학교인 경성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해 교명을 서울중학교로 개명하고 새로 세운 것처럼 열심히 가꾸어 나가 11년 동안 세칭 1류 학교로 만들었고 1957년에 내가 다니던 학교에 부임하였다. 그는 마치 이 세상에 후진을 양성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그가 지닌 모든 역량을 오로지 교육에 쏟았으며, 우리의 교장으로 와서는 우리 학교를 마치 영국의 유명한 ‘이튼고교’를 닮은 학교로 개조하듯 교육했으며, 단순히 세상의 지식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제대로 된 인격자로 만들기 위해 기본적인 역량을 지닌 신사로 육성하듯 매우 엄격한 교육 즉 ‘스파르타식의 교육’을 했다.
그리하여 아침 조회 시간에는 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생각들을 ‘훈화’로써 해주었다. 그 내용은 때로는 중복되는 것도 있고, 또한 상당히 길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그가 제시하고 가르치려는 내용 중에는 내가 공감하여 가슴에 간직하면서 일생동안 잊지 않고 실천하는 것들도 상당했다. 그가 우리의 건강을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그리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 중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한 컵 이상의 물을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대변을 봄으로 내장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사실 60년도 더 옛날 우리의 생활형편으로 이를 지키기가 몹시 어려웠지만 억지로라도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그런 나의 의지는 심지어는 내가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에도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지키는 신조가 되었으며, 덕분에 이날까지 지금의 건강을 유지한다고 자족하고 있다. 다음에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고 걸을 때에는 허리를 펴고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항상 ‘나는 주옥같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긍지를 지니라고 강조하였다. 덕분에 어려서부터 ‘나는 똑똑한 사람이며, 또한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하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왔다.
덕분에 아직 내가 사회의 때가 묻지 않았던 순수한 어린 시절에 만난 스승이 있었고 그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나의 갈 길을 바르게 가르쳐준 스승을 생각하며, 지난 주일이 스승의 날인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