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28) 우남 이승만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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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

‘한국군, 연합군 보호해 달라’ 절규의 기도 드림

이승만의 기독교 신앙은 정부 수립에서 나타났다. 대한민국 건국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눈물로 기도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해방에서 건국에 이르는 중요한 시기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했다.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3.1기념행사에서는 “한민족이 하나님의 인도 하에 영원히 자유 독립의 위대한 민족으로서 정의와 평화와 협조의 복을 누리도록 노력하자”고 연설했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종로구 당선자인 감리교 목사 이윤영으로 기도하게 하였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백성을 사랑하셔서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나라를 이룩하게 하심을 감사했다. 역사의 첫 걸음을 걷는 오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렸다. 반만년 우상숭배한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이끄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7월 20일 국회 선거에서 의원 186명 중 180명의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했으며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승만은 기독교인이었으며, 반공주의자로서 공산주의를 분쇄하면서 배일 정책으로 강경하게 견지하였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다면 독립은 지연되었을 것이고 사회의 혼돈은 심화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독교 신앙의 터 위에 자유민주주의로서 민주공화국을 세웠으며 공산주의와 대결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동이 트기 전 북한군은 38선을 넘어왔다. 6월 27일 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적의 공격이 재개되었다. 야간에 탱크를 앞세운 적은 미아리 삼거리에 설치해 둔 장애물을 밀어 제치고 서울 도심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 늙은 목숨, 조국통일의 제단에 바치겠나이다. 하나님, 총이 없는 우리 아이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대구에서 매일 밤 절규했다. 당시 대통령은 피 흘리는 한국군과 연합군을 하나님께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다. 당시 적은 대구를 향해 진격해와 대구가 적에게 함락될 위기였다.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좀더 신속히 행동해주길 바랐다. 

이승만에게서 교회사의 면면한 흐름을 본다. 복음으로 개화된 신앙인들은 애국 전선으로 나아갔다. 이후 9월 10일 때늦은 장마로 낙동강 전선이 아군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어 보급과 전열정비에 도움이 되었다. 이후 미군이 군산과 인천을 포격했고 포항에서도 전진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낙동강 전선의 워커 장군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편에 계시니 누가 감히 우리와 대항해 싸울 수 있겠느냐며 독려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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