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육관 앞 작은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사택에서 나와 교회로 가려면 감나무를 지나가야 하니 때로는 관심을 가지고 보기도 하고 늘 보는 것이라 그냥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감나무 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그해 자란 녹색 가지에 감나무 꽃이 핀다고 하니 올해 나온 가지가 아주 튼실한가 봅니다. 감나무 꽃을 보시면서 교인 한 분이 “목사님, 감나무가 100년이 되면 1000개의 감이 달린다고 옛 어른들이 말씀하셨어요” 하시면서 웃으시는데, 풍성함을 기대하는 마음이란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교회에 감나무가 자라게 된 게 10 년 전입니다. 교회 부임해 적응하고 있는데 그해 가을에 교인 몇 분이 집에서 딴 거라 하시면서 감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지금은 집을 새로 짓기도 하시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시기도 하셨지만 당시만 해도 교인들의 집에 마당이 있었고 어김없이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따온 감이었습니다. “며칠 뒀다 드시면 달달하니 맛이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먹어본 달달한 감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사석에서 감이야기를 했더니, 장로님 한 분이 귀담아 들으시고 다음 해 봄, 감나무 한 그루를 사 오셔서 심으셨습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셨다가 물을 주시기도 하시고, 거름도 주시고 정성스럽게 감나무를 돌보셨습니다.
한 번은 교회공사로 인해 마당을 파게 되었는데, 그 흙을 포크레인 기사가 감나무에 붓는 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고 거의 묻힐 뻔했는데, 장로님께서 흙을 거둬내고 잘 파내어 교육관 작은 마당에 심으셨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인부 한 분이 “감나무는 성질이 이상해서 옮겨 심으면 잘 살지 못한다”는 말을 뒤로 하시고 묵묵히 심으셨습니다. “거기는 볕이 잘 들지 않아 잘 자라지 않아요” 하는 동네 사람의 말을 뒤로 하시고 묵묵히 심으셨습니다. 그 해 감나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죽었다고 뽑아 버리라 하는 교인도 있었습니다. 새벽기도에 오셨다가 물을 주시고 거름도 주셨습니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작은 경험을 뒤로 하고 장로님의 생명에 대한 고집스러운 묵묵함에 힘입어 지금 감나무는 잘 자랐습니다. 제법 그늘도 만들어 줍니다. 이젠 추수감사절이 되면 의레 감나무에서 딴 감이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작년에는 딴 감을 교인들에게 하나씩 나눠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딴 것이라 하니 더 좋아하시더군요.
당나라 사람 단성식이라는 분이 감나무를 이렇게 예찬했습니다. “감나무는 수명이 긴 나무이며,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새가 집을 짓지 않으며, 벌레가 꾀지 않는다. 또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먹음직하며, 잎에 글씨를 쓸 수 있으니 칠절(七)을 두루 갖추었다.” 참 좋은 글귀입니다. 저는 이 좋은 글귀보다 은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벽기도회 그 자리에 앉아 묵묵히 기도하시는 장로님의 감나무를 사오시던 모습, 그리고 묵묵히 감나무를 돌보시던 모습이 더 귀합니다.
김유현 목사
<태릉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