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윤리와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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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유럽 교회의 선교는 쇠락하였다.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가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그 주된 원인이 윤리의 실패에 있다고 본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나라, 2차 대전으로 큰 피해를 본 나라, 모두 기독교 국가였다. 2차 대전 가운데 각 나라는 자기 나라의 승리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하였다. 침공하는 나라의 교회는 침공군을 위하여 기도하고, 방어하는 나라는 방어하는 군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비기독교인들이 볼 때, 저렇게 서로 싸우는 종교가 어떻게 세계의 희망이 되고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의심을 품는 일은 당연하였다.

전쟁이 끝난 다음, 유럽의 교회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타문화권을 위한 선교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19세기에는 유럽 대부분의 교회가 세계 복음화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심지어는 “이 세대 안에 전 세계 복음화”를 꿈꾸고 외치는 지도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2차 대전 이후에는 유럽의 교회 자체가 무기력증에 빠지게 되었다. ‘기독교가 과연 세계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952년 독일 빌링겐 선교대회에서 ‘교회의 선교’ 대신에 ‘하나님의 선교’가 부각되게 된 배경에는 유럽 교회의 윤리적 실패가 있었다.

1884년에 서양선교사들에 의하여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 기독교는 1919년 삼일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결과,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당시 한국 개신교 신도 수는 전체 국민의 1% 정도였지만 민족독립운동의 주체 세력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이러한 한국교회를 보면서 “경찰서 10개를 짓는 것보다 교회당 1개를 세우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하였다. 일제시대 민족과 함께 고난을 당했던 한국교회는 해방 이후 크게 부흥하였다.

그러나 일제시대 천주교의 입장은 달랐다. 한국 천주교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않았다. 1909년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다음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하기 원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는 안중근을 살인자로 규정하고 고해성사 받는 것을 거절하였다. 이후 1919년 삼일만세운동에 대하여 침묵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일본과 동맹관계에 있던 이태리 정부의 눈치를 보던 로마 가톨릭교회의 지시로 한국천주교회는 항일운동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결과 당시 한국 천주교는 민심을 잃었다. 그리하여 한국 천주교는 1960년대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1950년에 발발한 6·25전쟁 가운데서 한국교회는 반공을 가르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반공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결과 전쟁이 끝난 다음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날 때에는 한국교회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청년들과 민주시민들로부터 민심을 잃었다. 하지만 천주교는 달랐다. 1965년 이루어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 천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명동성당이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20년이 지나자 2000년대부터는 천주교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성장을 멈추었다.

지금 러시아 정교회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시한 푸틴을 지지하고 있다.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을 지지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 정교회는 세계 정교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그리스도의 길을 가기보다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윤리적인 실패이다. 이후 러시아 정교회는 외면받을 것이며 쇠락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길에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윤리적 시험대에 서 있다. 대형교회 세습의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고민도 많고 손해도 많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지금 당장 손해가 되더라도 윤리적으로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선교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공적 윤리를 버리면 민심(民心)을 잃어버리게 된다. 민심을 잃어버리면 선교는 실패한다. 새 찬송가 516장은 우리에게 교훈한다.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세계 만민의 참된 길을 따르라” 그래야 어둔 밤이 지나고 동틀 때, 환한 빛이 비쳐올 때, 교회가 다시 영광스럽게 서게 될 것이며, 복음 선교가 힘 있게 이루어질 것이다.

남정우 목사<하늘담은교회 담임, 전 장신대 선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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