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의 親日, 변절의 비밀과 진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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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야? 운허.” 춘원은 동생뻘 되는 6촌 운허를 빤히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나이는 춘원과 동갑이지만, 생일이 춘원이 좀 빨라 형뻘 되지만, 두 사람은 친구처럼 터놓고 지낸다.

“반민특위에서 지난 날 불기소 처분한 것을 취소하고 다시 기소해서 춘원을 불러들인다는 얘기가 있어. 나쁜 놈들, 일사부재리 원칙도 무시한다는 것이냐?” 운하는 스님답지 않게 오늘은 좀 흥분하고 있었다. 운허! 운허는 누구인가. 운허(耘虛) 스님의 평생 화두는 이 나라의 독립, 교육, 역경, 수행이었다. 법명은 용하(龍夏)이고 운허는 법호이다. 운허는 일찍이 흥사단에 가입, 광한당을 조직해 직접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후일, 춘원이 자신을 찾아 올 때마다 그를 나무라기보다는 이해하고 늘 위로하며 응원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춘원을 친일 변절자로 타박했지만, 이곳에 피해 도망 온 춘원을 운허는 늘 따뜻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오늘 아침에 조광철이 다녀갔어. 그 자가 하는 말이야. 반민특위에서 춘원을 다시 불러들인다고…” 조광철은 반민특위 조사국에 나가 일하는 운허 집안의 5촌이다. 격정에 잠시 흔들리던 춘원의 마음이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그는 운허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운허! 자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게 다시 그 때 그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결심했을 걸세. 구차한 변명 같지만, 모든 것은 후일, 그것도 때가 되면 역사가 나를 심판하는 것이지, 사람이 나를 심판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원래 심약한 위인이지. 성삼문이나 안중근처럼 독야청청(獨也靑靑)하지 못해. 내 한 몸 죽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린다면, 나는 지금도 그 일을 기꺼이 선택하겠다는 말일세.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그 자들의 우리 조선인 말살 계획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 그 블랙리스트 살생부를 보면, 소름이 끼치지. 우리 조선의 뜻있는 유능한 인재들의 씨를 말리는 그들의 집요한 말살정책의 그 무서운 음모들! 그것을 보면서 그 시대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었는지를 나는 내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일세.”

춘원은 속사포처럼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었다. 춘원의 독백은 계속 되었다. “현실을 무시하고 저돌적으로 독야청청, 죽어가면서 지조를 살려서, 계속 대한독립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그 당시에는 최선의 길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판단했었네. 지난 반민특위에서 나는 결코 구차한 변명같은 것을 대지 않았어. 물론 변명을 늘어 놨다 하더라도 내 말에 아무도 경청 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눈을 감고 듣기만 하던 운허가 춘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짐하듯, 힘주어 말했다. “춘원 형! 내 지금껏 춘원에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참으며 살아 왔는데, 오늘은 꼭 한가지만 물어 보자!” “그래 물어 보게나 아우님! 오늘은 나의 진실과 비밀의 뚜껑을 열고 대답하겠네.”

좀처럼 이런 스타일로 말하지 않는 ‘운허’의 진지함에 춘원도 긴장해서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가짐을 바로 잡았다. “인생 전반부에는 줄곧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형이,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갔지 않나? 그때 그곳에서 얼마나 살았지?” “응, 반년만에 병보석으로 나왔어.” “그래, 맞았어. 출옥해서 그 후부터 행동이 확 달라진 거 내 기억하지.”

“맞았어.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조선문인협회 회장 되고 창씨 개명하는 등 완전 친일로 돌아섰지. 형이 그때 갑자기 왜 그랬는지를, 오늘 내게 그 진실을 말해 달라는 거야.” 운허의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말해 주지.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 자네 지금까지 궁금해서 어떻게 참고 살았나?” 춘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

“응,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다 때가 있는 것이지. 나는 그 때를 오늘까지 묵묵히 기다렸을 뿐이야.” “알았어. 말해 주지.” 춘원은 컬컬한 목을 맑게 가다듬기 위해, 물컵의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하지 않은 춘원의 속마음, 비밀과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도쿠도미의 살생부’에서부터 시작된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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