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종소리] 민족의 중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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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 즉 저항자들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나 조직 심지어 국가도 저항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작금에 국회 일각에서 제정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법제정 시도들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대하는 입장에서 보면 때로 우리 자신의 분노에 휩싸이게 되고 동 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프로테스탄트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지만 우리에게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세가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에게 있었던 중보자의 마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애굽에서 우리를 이끌어낸 신”이라 그렇게 광야에서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들을 진멸하여 다 사라져 버리게 하고 내가 너로 다시 새로운 민족을 시작하겠다”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다면 이런 말씀을 하셨겠는가? 이것은 모세를 떠보려고 하는 말씀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순간적으로 분노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다. 그만큼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끔찍한 죄악이기 때문이다. 

이때 모세의 태도가 우리가 가져야 될 태도이다. 그것은 중보자의 마음이다. 놀랍게도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시겠다 하시는데 “하나님, 그렇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모세의 마음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너머에 있는 하나님 마음의 중심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바라본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은 하나님의 진노는 반드시 악에 대하여만 진노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잘못된 일에 대하여 분노하면 사랑이 식어진다. 누군가를 반대하다 보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 행하고 있는 그 사람 자체가 싫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본질 자체가 사랑이시기에 악과 불의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진노하시지만 그 진노의 대상을 향한 사랑도 결코 사라지지 않으신다. 그래서 진노의 원인이 해결되면 하나님은 사랑이 부어지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 저항과 반대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부르짖는 것은 교회의 이익과 이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법과 질서에 따라 세상이 흘러갈 때 그 영혼들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고 결국 역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수 밖에 없기에 사랑하기에 반대하고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의 반대는 하나님의 진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을 붙잡은 것이 되어야 한다. 겉으로는 반대사역이지만 중보사역이다. 이민족이 이 시대의 잘못된 흐름, 성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우상을 숭배하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지만 우리의 분노가 하나님이 쓰시는 참된 저항이 되려면 “하나님 이 나라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이런 악행을 행하는 자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된다.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교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다. 

유럽과 북미 교회들이 뒷짐지고 있다가 이제야 정신차리고 낙태법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지만 뒤집어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게 수십 년 걸린다. 백 년이 돼도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은 모세의 중보자의 마음이 있어야 된다. 이 세상과 그들의 영혼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바라며 눈물로 반대하고 더 나아가 반대를 넘어서 하나님의 질서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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