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죄인이듯, 중독 누구도 예외일 수 없어
‘중독 회복을 위한 걷기’, ‘중독회복상담학교’에 이어
공동체 훈련 프로그램 시작
기독교중독연구소(소장 유성필)는 알코올, 도박, 약물, 게임, 담배, 성, 음식, 쇼핑 등 다양한 도박 문제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성경적 가치로 돕는 기관이다.
기독교중독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유성필 소장은 현 사회를 “중독사회”라고 표현했다. 더욱이 지난 3년 코로나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대면 모임이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고립됐고, 고립은 중독 상황을 더욱 양산했다.
“어느 학자는 ‘중독’의 반대를 ‘관계’라고 해요. 중독 자체가 고립을 의미하는데 코로나로 관계가 단절되고 고립된 사람들은 손쉽게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에 접속해 중독에 빠져들지요. 우리 주변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중독 상품들이 너무 많아요. 예전엔 우리나라를 마약 청정국이라고 했는데 얼마 전에 고등학생이 마약을 유통 판매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을 정도로 이젠 약물중독자들도 많아요. 중독 연령층도 점점 낮아지고 있고 도박, 비트코인이나 주식, 성, 쇼핑 등 어떻게 보면 중독에 안 빠지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중독에 많이 노출돼 있어요.”
중독자 한 사람이 그 주변 여덟 명을 바쁘게 한다고 한다. 중독자는 당사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 지인들까지 그 영향이 깊게 확산된다는 데 더욱 큰 문제가 있다. 때로는 가족들이 중독을 강화하기도 한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현상에 대해 유성필 소장은 “회복을 위한 비밀”이라며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이 모두 관심을 갖고 치료와 회복에 가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성필 소장은 자신이 한때 도박중독에 빠져 큰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다. 유 소장의 아내는 일본인 나카가와 에리 전도사.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넘어 결혼해 한국에 왔지만 도박에 빠진 남편으로 나카가와 에리 전도사는 한때 쪽방에 거주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저는 심각한 도박중독자였어요. 제가 했던 도박은 ‘스포츠토토’라고 보통 사람들도 많이 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스포츠로 베팅해 돈도 벌 수 있다는 소소한 재미와 욕심이 점차 커져서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됐지요. 아내가 저로 인해 무척 힘든 시간들을 보냈어요.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은 끝까지 인내하며 제 곁을 지켜준 아내 덕분입니다.”
유성필 소장은 “신앙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죄인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만 있지 모두가 중독자이고 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위대한 고백이 중독에서 빠져 나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중독자 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는 도박중독자 000 입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 000 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해요. 처음 모임에 갔을 때 그 고백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저도 중독이라는 말이 낯설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모임에 가서 ‘아 내가 중독자구나.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 제 안에서 변화가 시작됐어요.”
유성필 소장은 도박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신앙 안에서 회복을 돕는 기관을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중독을 못 고치실 리 없다는 믿음으로 유 소장은 기독교중독연구소를 시작했다.
“2013년 1월 새해가 되면서 뭔가 결단을 해야겠다 싶어 가족들과 걷기 시작했어요. 저희 집이 서울역 근처라 가까운 남산을 걸었습니다. 걷는 건 돈이 안 들잖아요. 처음 2주 동안은 저희 가족 셋이서 걸었는데 나중에 다른 중독자 분들도 한 분, 두 분 오셔서 함께 걸었어요. 그렇게 ‘중독 예방과 회복을 위한 남산 걷기’ 프로그램을 중독자분들과 함께 6년 정도 진행했어요.”
이후에는 중독회복상담학교를 시작했다. 중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중독자를 도울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이 무엇인지, 또 그 가족들이 주고받는 영향들이 어떠한지 알려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중독회복상담학교는 일 년에 두 차례 진행돼 코로나로 잠시 중단됐다가 이번 학기에 12기 과정이 지난 9월 5일 시작됐다. 오늘 12월 12일까지 총 12주 과정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서울성남교회(서울역 12번 출구)에서 진행된다. 매 학기 100여 명이 참여한 중독회복상담학교를 통해 지금까지 천여 명의 사람들이 중독에서 벗어나고 가정이 회복되는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중독회복상담학교는 12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유성필 소장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새로운 비전을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중독 예방과 회복을 위한 남산 걷기’ 프로그램을 마칠 때에도 쉽지 않았어요. 어떤 부분에서는 상실이고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지요. 걷다 보니 하나의 훈장이 되고 계급이 되고 보이는 것에 마음이 쓰이고, 결국 이런 것들도 일종의 중독 성향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내려놓아야 하겠다 판단했지요. 중독은 브레이크가 없는 거예요. 열정을 쏟다보면 멈추기가 힘들지요. 시작보다 마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예요. 중독회복상담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사만 하루에 3명, 한 학기당 총 서른 명이 넘는 강사진이 준비돼 있고 이분들이 모두 중독과 상담 분야 전문가들로 무척 훌륭한 분들이시거든요. 제가 직접 다 섭외하고 발로 뛰면서 수강생을 모집해왔어요. 지금까지 온 것은 은혜, 기적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다음,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성필 소장이 계획하고 있는 다음 스텝은 공동체 훈련이다. 유 소장은 중독에 빠지게 되는 여러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이 어려서 가족으로부터 당한 상처와 결핍이라고 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가 필요하고 공동체를 통한 치유가 중독으로부터 회복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생물학적 가정에서 본의 아니게 부모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상처받은 그런 아픔이나 고통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크고 작은 상처로 인한 아픔들이 신앙 안에서 치유되고 온전히 회복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위로받고 싶고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서 결국 술이나 약물, 도박 등 중독에 빠지게 되는 거거든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영적인 가정을 만나 생물학적 가정에서 겪었던 아픔이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고, 그것이 회복에 가장 좋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10년 동안 중독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또 사람들을 만나 도우면서 중독자와 그 가족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었는데, 결국 공동체 안에서 회복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성필 소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기독교중독연구소를 통해 많은 중독자들을 만난 결과 중독이란 물질이나 행위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결국 진실로 놓지 못하는 것은 자아라는 것. 하지만 자아를 장사 지내지 않는 한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계에 있어서, 의사소통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말이 ‘너’라는 말이고, 가장 쓸모없는 말이 ‘나’라는 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생각, 내 기분, 내 욕구를 말하지요. 중독은 소통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중독자들은 대부분 가족들과 소통하기 힘들어해요. 제가 한 책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있는데, 수치스럽고 불안하고 마주하기 싫은 진실을 마주할 때, 그 진실을 고백할 때 우리는 죽는 것과 같은 공포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런데 부활은 죽음 이후에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죽을 것 같은 그 진실을 마주할 때, 인정하고 고백할 때 우리는 부활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소통법을 배우고 나니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했는데 저는 매 순간 죽는 기쁨을 맛보고 있어요.”
유성필 소장은 수많은 중독자들을 만나면서 “나쁜 사람은 없다. 아픈 사람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유 소장은 한국교회가 중독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중독은 누구나 빠질 수 있으며 목사, 사모, 장로, 권사, 집사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가 모두 죄인인 것처럼.
“그동안 중독회복상담학교를 운영해오면서 목사님, 사모님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정작 교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요. 비록 저는 이 프로그램을 마무리하지만 중독에 이해와 관심이 있는 교회가 나서서 중독 관련 프로그램이나 세미나를 열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제가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어요. 깨어있는 목사님이나 교회가 시작해주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 일에 한국교회가 나선다면 수많은 사람들과 가정들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한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