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향린원’ 선생님 ①
순수하고 가식없는 인간성
오해한 소년에 정중히 사과
남대문·청계천 고아들의 형
형 태은, 광은에게 큰 감동
글은 이것으로 끝나 있다. 마저 끝맺음을 하려 했겠으나 끝내 미완으로 남겨져 있게 된 글이다. 이 미완의 <푸트볼과 인생>은 그가 향린원 시절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김 선생에서 우리는 그의 한 면을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이종환 씨의 회고담
그 무렵의 에피소드로, 그때 잠시 동안 광은과 함께 향린원 생활을 한 소설가 고 이종환(李鍾桓) 씨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했던 적이 있다. 다음 이야기는 황 목사가 서거한 뒤 이종환 씨가 어느 방송 대담에서 털어놓은 사실이다.
어느 날 교실에서 황광은 선생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인자하게만 느껴지던 분이요, 더욱이 그때는 공부 시간도 아닌데 웬일일까 하고 직원들은 놀란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빨리 달려! 어서 때려! 아까 내가 너를 때린 만큼.”
분명히 황 선생이 야단치는 소리였다.
얼마 전에 여자 손님 한 분이 왔었는데 핸드백 속의 돈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 보니 한 소년이 훔쳐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불러다 물어 보았으나 그 소년은 완강히 부인했다. 타이르고 윽박질러 보았으나 계속 부인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젊은 황 선생은 마침내 채찍을 들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분실한 돈은 그 소년이 있는 방이 아닌 다른 방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황 선생은 그 소년을 불러다가 정중히 사과하고, 그 소년에게 매를 쥐어 주고는 자신의 바지를 걷어올리고 소리친 것이다.
“빨리 때려! 아까 내가 너를 때린 만큼 어서 나를 때려!”
그 소년은 채찍을 손에 든 채 와아 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공개한 이종환 씨는 다음과 같은 말로 말끝을 맺었다.
“나는 그때 황 목사의 순수하고 가식이 없는 인간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식으로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합니다만, 나는 가식으로도 그런 흉내조차 낼 수 없었으니까요.”
거지들의 ‘형님’ 황광은
그가 무작정 상경하여 향린원에서 고아들과 생활하고 있을 때 고향집에서는 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서울에 갔다온 고향 사람들의 입에서 “광은이가 서울에 가더니 거지가 되었더라” 하는 소문이 퍼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실상 그때 어린 황 선생은 거지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서울 거리를 누비고 다녔기 때문이다.
광은 선생의 집에서는 즉시 가족 회의가 열렸다.
“즉시 소환해야 한다.”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공부도 좋지만 동리 사람들 보기에 망신스럽고 창피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형 태은 씨는 ‘6일 새벽 서울 도착 예정’이라는 전보를 치고 길 떠날 준비를 했고, 어머니는 “사람 노릇하기 틀렸어. 끝내 거지 대장이 되었구나!”하고 새삼 한탄하고 있었다.
형은 경의선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다음날 새벽 미명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광은이 마중 나와 있었다. 형을 보자 그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다짜고짜로 말했다.
“형님, 나한테 주려고 가져온 선물 있어요?”
그는 형님이 사 가지고 온 과자와 빵을 받아서 호주머니에 잔뜩 집어넣었다.
형은 광은이 하도 배가 고파서 그러려니 했다.
그들은 밝아오는 새벽 거리를 걸어서 향린원이 있는 삼각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 시내의 교통이란 전차가 전담하던 시절이다. 삼각산까지 가는 전차도 없었으려니와 돈 한 푼도 귀한 그들 형제였기 때문이다.
그들 형제가 남대문에 이르렀을 때였다.
“와아, 형님이다!”
“형님, 어디 가요?”
남대문 꼭대기에서 뜻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대문에서 7, 8명의 거지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광은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광은도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형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남대문 꼭대기로 쏜살같이 달려 올라갔다.
형 태은 장로는 그저 멍청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광은은 거지 소년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더니, 주머니에서 과자를 나누어주고는, “좀 있다가 보자”하고는 뛰어 내려오는 것이었다.
형제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피차 아무 말이 없었다.
형은 큰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 형제가 청계천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때는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이어서 서울의 하수구 물이란 물은 모조리 흘러내려 더럽기 이루 말할 수 없던 때였다.
청계천에서도 광은은 형더러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거기에도 광은을 기다리는 꼬마 친구들이 많았던 것이다.
청계천 다리 밑에 거적때기를 깔고 10여 명의 꼬마들이 자고 있었다. 그들은 광은을 보더니 환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은은 그들에게도 과자를 나누어주며 말했다.
“아픈 사람 없지?”
그 말을 듣고 여나믄 살 먹어 보이는 꼬마가 자기 무릎을 내밀며 어리광하듯 울었다.
“형, 나 여기 아파.”
그 무릎은 상처로 딱지가 앉아 있었다.
“무척 아프겠구나”하며 광은은 호주머니에서 연고 종류의 약을 꺼냈다. 연고를 바르는 동안 그 꼬마는 계속 어리광을 부렸다.
“괜찮아, 괜찮아”하고 광은은 그 꼬마를 어루었다.
그들 형제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침묵이 안쓰러웠던지 광은은 형에게 말했다.
“무척 외로운 꼬마들이거든요. 그래서 가끔 그들한테 들러서 옛날 이야기도 해 주고, 하모니카도 불어 주고, 또 함께 놀아 주기도 하지요.”
형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동생이 하는 일이 너무나 옳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동생을 데리러 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야, 제발 좀 너무 거지처럼 하고 다니지 말아라. 집의 체면도 좀 생각해야 하지 않겠니.”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전 장신대 학장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