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여전히 신음하는 제주 선교지
코로나19로 인한 지난 2년여 동안의 시간은 선교지인 이기풍선교기념관도 황폐화시켰다.
장로교 목사이자 제주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선교사는 1907년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7인 중 한 분으로, 1908년 2월 배가 난파되는 어려움을 딛고 제주에 도착했다.
그가 향했던 ‘제주’라는 선교지는 선교사에겐 음식을 팔지 않고, 잠자리도 제공하지 않았기에 선교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장소였지만, 이기풍 선교사는 그 역경을 딛고 1916년까지 제주에서 믿음의 씨앗을 심어갔다. 그 후 이기풍 선교사는 1927년 제주를 다시 찾아 65세가 되던 해인 1931년까지 그곳에서 사역을 이어갔다.
이기풍선교기념관은 제76회 총회에서 제주노회가 청원해 선교관을 건립키로 결의하고 제주노회의 1만400평 대지 헌납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총회는 전국교회를 대상으로 한 모금으로 약 65억 원의 재정을 확보해 수년에 걸쳐 지상 2층, 지하 1층, 3개 동 구조 건축물로 제주 한라산 400m 고지에 건립되어 2천여 평의 규모로 1998년 건립됐다. 이후 2000년도에 명성교회가 20년 계약으로 운영을 실시했지만, 2010년 6월 제주노회 유지재단으로 이관됐다.
2022년 현재 이곳은 코로나19 및 내부수리로 인한 휴관 상태로 문이 굳게 잠겨있으며, 건물 주변은 잡초와 풀이 무성한 상태로 방치 되어있다.
다행히도 이기풍선교기념관 내부에 전시되던 자료들은 지난 2021년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한 모슬포교회로 옮겨져 전시가 계속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는 성도들은 많지 않다.
코로나19로 대한민국은 지난 수년간 큰 고통을 받아왔다. 특히 관광산업도시인 제주는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3년이 지난 현재, 많은 부분에서 점차 회복되어가고 있지만 깊은 의미를 지닌 이기풍기념선교관은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더해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