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한 섬김의 사람을 세우고 교육하고 배출합니다”
섬김의 정신으로 이어온 100년… 개교 100주년 맞은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지방의 한 신학대학이 100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교회나 이 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큰데, 한일장신대학교 개교 100주년이 더욱 특별한 것은 그 시작이 한국 최초 여성신학교였다는 데 있다. 한일장신대학교는 100년 전 이름조차 없었던 한국 여성들을 신앙으로 교육했고 그들은 호남지역 복음화를 꽃피운 밑거름이 됐다. ‘성공이 아닌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이라는 말을 남긴 학교 설립자 서서평 선교사의 정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일장신대학교의 근간을 이룬다.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9월 28일 학교에서 채은하 총장을 만났다.
“지난 100년 동안 한일장신대학교를 거쳐 간 외국인 선교사님들이 서서평 선교사를 포함해 열네 분이세요. 모두 목사가 아닌 간호사, 의사, 교육자셨어요. 조선에 오지 않았다면 미국 사회에서 중산층 크리스천으로 편안하게 살았을 분들이세요. 오직 소명을 따라 당시 너무나 가난하고 열악한 조선에 오셔서 자신의 유익이 아닌 한국 여성들의 삶과 복음전파를 위해 진짜 온 힘을 다해 섬기셨어요. 그 섬김의 정신이 우리 학교의 뿌리가 된 거지요.”
한일장신대학교는 1922년 서서평 선교사(엘리자베스 쉐핑)가 세운 광주 이일성경학교와 1923년 잉골드 선교사(마티 잉골드 테이트)가 세운 전주 한예정성경학교가 합쳐져 ‘한일’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장애학생복지평가 최우수대학 선정, 2020년부터 2022년 간호학과 국가고시 100% 합격, 대학기관평가인증 2회 연속 획득 등의 성과를 거뒀다. 현재 신학과, 사회복지학과, 심리상담학과, 실용음악학과, 간호학과, 운동처방재활학과 등 6개 학과와 신학대학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 아시아태평양국제신학대학원, NGO정책대학원, 심리치료대학원에서 약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수학한다. 한일장신대학교는 목회자 양성뿐 아니라 복지와 의료, 운동 등 전문분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체득한 전문가를 배출해 사회 곳곳에서 섬김을 실천하겠다는 교육목표를 갖고 있다.
채은하 총장은 “‘섬김’이라는 단어가 본래 기독교적 용어인데 최근에는 정치인이나 사업가 등 일반인들도 해당 분야에서 섬기겠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진정한 섬김이라기보다는 권력과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거 같다. 목회자, 사역자들이야말로 섬김의 종들인데 최근 기독교가 지탄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에서조차 섬김의 정신이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오늘날 한일이 있게 한 열네 분 여선교사들의 섬김, 그리고 섬김의 원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를 사회 각 분야로 배출하는 것이 한일장신대학교의 목표”라고 말했다.
“지방의 작은 신학대학교로서 서울에 있는 학교보다 시설이나 환경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열악하고 부족한 것이 많지요. 이런 여건에서 우리 학생들이 교육받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하지만 저는 풍요로움 속에서 섬김의 종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 학교가 신학대학교이긴 하지만 6개 전공이 있고 대부분 서비스 위주의 전공이거든요. 섬김의 정신이 없으면 직업인으로 삼기 힘든 전공들이에요. 2년 전 총장 취임하면서 우리의 섬김이 억지로 하거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돕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행복한 섬김’을 만들자고 말했었어요.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섬김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요.”
채은하 총장은 학교 서열화, 서울지향주의 문화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지방의 작은 신학대학교 출신 학생들이 갖게 되는 어쩔 수 없는 패배감에 대해서 언급했다. 서울 명문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 사회와 이 시대는 끊임없이 부정적 메시지들을 전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존감은 이 땅에서 할 일이 있다는 데서 나온다. 한일장신대학교 출신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피 조물로서 충분히 행복한 섬김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채은하 총장의 말에는 더 큰 힘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장애와 여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 교단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에서 역대 유일한 여성 총장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은하 총장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다. 약학대학에 합격했지만 학교에서는 “몸이 불편하니 입학을 불허”했다. 채 총장은 그때 사회적 죽음을 한번 경험했다고 여긴다.
“어딜 가나 저는 일종의 부족한 사람, 연약한 사람으로 판단돼요. 교회에서도 일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지요. 총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지금도 저는 그런 시선과 판단을 받고 있어요. 제게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냐고 질문을 하는데 사실 극복되지 않았어요. 제 몸도 여전하고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시선도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비하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게 그들의 일이라면 저는 비를 맞듯이 그런 편견과 부정적 시선을 맞으면서 때론 속상해하기도 하고 때론 무시하기도 하면서 그저 제 삶을 살고 제 길을 걸어갈 뿐이지요.”
2년 전, 채은하 교수가 한일장신대학교 총장에 취임하자 누군가는 “유리 천장을 뚫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총장이 된 뒤에는 이전보다 더 날카로운 감시와 판단, 비판의 시선들이 채 총장을 둘러쌌다. 장애인에 여성이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는 수많은 눈들이 채 총장을 유리 천장 위에 올려놓고 밤낮없이 감시 중이다.
여선교사들의 섬김 위에 여성도들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시작한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여성 총장이 선출된 것은 큰 의미였다. 채 총장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했고 그동안 외국에서 유학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받은 하나님과 한국교회로부터 받은 은혜에 섬김의 삶으로 갚자는 마음으로 총장직에 나섰던 것이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학교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데다 특히 신학대학교에서는 목회자 수급문제로 수년 전부터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얼마 전 열린 본 교단 107회 총회(총회장 이순창 목사)에서는 교단 산하 7개 신학대학원 입학 정원을 3년간 매년 4%씩 총 12%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채은하 총장은 이에 대해 “입학 정원을 굳이 감축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고 있다”며 “앞으로 10년, 15년 뒤에는 목회자 공급이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당장 교육전도사 찾기 힘들다. 젊은 신학생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와 이미지도 많이 낮아진 데다 교회마다 학생, 청년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집회나 수련회에도 모이질 않으니 목회나 사역에 대한 동기부여의 기회도 사라졌다. 이런 때일수록 각 교회에서 좋은 인재들을 신학교로 보내주길 바란다고 채 총장은 당부했다.
“일부 목회자나 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 중 한일장신대학교와 같이 비신학과가 많은 학교에 지원해도 되나 고민하는 분들이 계세요. 또 목회의 길이 어렵고 힘든 길이니 주저하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참 목회자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인재들을 신학교에 보내주셔서 우리 학교를 통해 다음 세대, 미래 교회가 잘 세워지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키우는 교회, 인재를 배출하는 신학교,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편 한일장신대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9월 22~23일 선교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한일, 섬김의 선교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선교대회는 한일장신대 출신 47명의 해외선교사와 교수, 재학생, 동문 등 300여 명이 참석 한가운데 고 김용복 한일장신대 초대총장에게 특별 서서평상이 수여됐으며, 한일장신대 출신 선교사 다섯 명이 선교보고하는 선교사역 컨퍼런스도 진행됐다.
10월 6일엔 개교100주년 기념 감사예배 및 기념식이 거행돼 본 교단 총회장 이순창 목사(연신교회)를 비롯해 전북지역 대학 총장들과 박남석 이사장, 남기인 총동문회장과 동문, 재학생, 교직원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 1부 감사예배에선 이순창 총회장 설교, 2부 기념식에서는 20여 년 전 급류에 휩쓸려가던 초등학생을 구하고 숨진 고 김신철 학생(신학과)에게 명예졸업장과 여성 최초 총회 부총회장을 역임한 김순미 장로(영락교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전회 장)에게 명예신학박사 학위가 수여됐다.
채은하 총장은 한일장신대학교 개교 100주년의 의미에 대해 “지난 100년 그 어떤 역사의 질곡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학교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단시간에 이루는 성공과 부흥에 열광하는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한일장신대학교는 지방의 외지고 소외된 지역에서 차별과 억압 아래 놓여 기회를 얻지 못한 여성들과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섬김의 가치에 역점을 둔 기독교적 교육과 돌봄의 산실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