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 최고의 신학자라면 토마스 아퀴나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학은 지금까지도 가톨릭 신학의 정통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당대뿐만 아니라 현대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학자이다. 그는 강조하기를 인간에게는 두 개의 빛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연(이성)의 빛이고, 또 하나는 은총의 빛이다. 전자의 진리는 철학이고, 후자의 진리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은총이란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의 핵심이다.
이성의 빛에 기초한 철학은 은총의 빛에 기초한 신학과 일치해야 하지만 철학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신학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철학은 교회의 시녀 노릇을 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더구나 그가 활동하던 중세는 교회가 사회를 지배하고, 교황이 황제를 임명하던 시대이므로 신학이 최고의 학문이었고 철학은 신학을 보조하는 학문으로 취급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神學大全)』이란 명저를 저술했다. 그는 존재에는 상급의 존재와 하급의 존재가 있고, 거기에는 하나의 질서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했다. 물질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느냐 하면, 육체를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육체는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느냐 하면, 영혼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영혼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느냐 하면, 신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의 학문의 결론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진리가 바로 기독교적 세계관의 근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기독교의 진리는 영구불변하는 인간 존재의 목적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번에는 “인간이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우리의 존재 목적은 기독교 진리의 요약이기도 하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오랫동안 고뇌를 지속해 왔다. 이 질문은 인간의 절대적인 가치관의 근본적인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철학이고 종교이다. 철학이 이 물음에 대답하지만 철학적인 대답으로는 항상 부족하다. 신학적, 성경적 대답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존재의 목적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한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인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그리고 유일하게 드릴 것은 영광이다. 구약에 기록된 히브리어의 영광이란 단어는 ‘카보드’인데 무겁다는 뜻이다. 신약에 기록된 헬라어의 영광이란 단어는 ‘독사’인데 인정하다는 뜻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나의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버지로 인정하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영광이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본체적 영광이다. 시편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라고 하지만 하늘이 “하나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만물은 존재함으로써 저절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이것이 만물이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이다. 해나 달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지음을 받았다. 이 영광은 본질적 영광이다. 이 영광은 보통 영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둘째는 효과적 영광이다. 이 영광은 피조물 가운데 사람이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리는 영광은 인간의 의지가 포함된다. 사람은 자발적으로 의지를 가지고 영광을 돌린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 이 영광은 고등 영광이라 표현한다. 이 영광이 진짜 영광이다. 사람이 자발적인 의지로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신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위해서, 신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우리의 존재 가치가 빛난다. 하나님을 위해 살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 목적은 성취된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