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란하고 청명한 가을날, 바람이 불고 거리에 낙엽이 휘날리고, 시청 앞 광장에 차려진 이태원희생자 합동분향소에 흰 국화를 손에 든 추모객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가을을 맞는 그 기다림과 환희와 달리 10월 29일 일어난 참사로 158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됐다. 그 절망 앞에서 희망의 빛은 어디에 있는가? 이 원통하고 억울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같이 손잡고 그 길을 내려오던 연인에게 작별인사도 못한 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10대, 20대다. 참담하다. 결혼을 앞둔 청춘,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해외에서 찾아온 절친, 모처럼 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이, 한 가정의 외동딸, 외아들, 그날 참사로 희생된 158명은 158가지 삶과 꿈을 안고 살아가던 젊은이들이다. 이 소중한 사람들이 순식간에 삶과 꿈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 영혼들이 주님 품에 고이 안겨 편안한 안식 누리기를 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헤아릴 수 없는 절망에 빠진 이들, 쏟아진 물처럼 퍼져 버리고 뼈마디가 모두 어그러진 사람들, 마음은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기력은 장작처럼 말라버린 유족들의 상실감과 아픔을 감히 누가 어루만져줄 수 있겠는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에 소홀한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든, 누구든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소중한 이들을 이렇게 잃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부르신 뜻을 따라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안전망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진실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슬피 우는 자와 함께 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가. 희생자 158명의 넋을 위로하고 부상자들이 속히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도록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닦아주는 수건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 유가족들, 지인들, 연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어느 가을 광화문 교보빌딩의 글판에는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 중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다. 인간은 고통과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며 살아가는데 지나가야 할 것들이 그대로 머물러 남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이 세상에는 지나가는 것과 머무르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머무르는 것에는 이끼가 끼고 녹이 슬게 되며 생명이 있든 없든 모든 게 다 썩게 되어있다. 그래서 아일랜드 시인 W. B. 예이츠(1865 ~1939)는 “말 탄 자여, 지나가라(Horseman, pass by!)”고 했다. 이 말은 그의 묘비명에도 “삶과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보내라. 말 탄 자여, 지나가라!(Cast a cold eye on life, on death. Horseman, pass by!)”고 새겨져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나갔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의 ‘레코 디 베르가모’라는 신문은 코로나19로 사망자가 급증하자 2020년 3월 14일자에 무려 11개 면의 부고란을 발행했다. 뉴욕타임스도 그해 5월 24일자 1면에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의 1%에 해당하는 1,000명의 부고를 실었다. 인간은 원래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존재다. 떠나더라도 자신의 마지막이 의미 있고 장엄하며 아름답기를 바란다. 부고로 가득 찬 뉴욕타임스 1면.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제5곡 ‘Aufenthalt(안식처 또는 나의 집)’는 처절하고 비통한 노래다. “파도치는 흐름, 술렁거리는 숲, 우뚝 솟은 바위, 그것이 나의 집/ 눈물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끝없이 흐르고/ 내 마음은 높은 나뭇가지 흔들리듯 끊임없이 고동친다./ 그리고 내 고통은 태고부터 우뚝 솟은 바위처럼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 내 고통이 영원히 머무른다는 “Bleibet mein Schmerz.”(잠잠하라, 잠잠하라 나의 고통이여)인데, 슈베르트는 이 대목에서 ‘잠잠하라’를 반복해서 부르게 했다.
제발 정치인들이여 싸우지 말라. 모두 다 사태를 수습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내 탓이오’하라!
제발 정치인들이여 싸우지 말라. 국회의원 배지 달았으면 여든 야든 공동책임이다. 삿대질하는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데 상대방에게만 삿대질인가? 국민들이 보고 있다. 2014년 10월 17일 오후 5시53분, 성남판교테크노벨리 콘서트 관람객 16명이 환풍구 위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희생자 규모만 10분의 1정도 차이만 있을 뿐 국민들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집단으로 목숨을 잃은 일은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된다. 모두다 사태를 수습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내 탓이오’하라!
이창연 장로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