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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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다르지 않다. 구제에 대한 말씀이 많은 것을 보면 가진 것 없는 어려운 사람들과 많이 가진 부유층과 공존하는 모습은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다. 빈부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온 인류에게 존재하는 문제다.

요즘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은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물질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부를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땀을 흘린다. 노동의 대가로 그 열매를 먹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수고의 땀을 흘린 사람은 그 열매를 거둔다는 말씀이 나온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서도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나온 이론이 있다. 차별 없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자고 나온 이론으로 공산주의가 등장했다. 

빈부의 격차가 커질수록 차별을 없애자는 논리가 작동되며 적지 않은 나라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칼 막스의 이론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 논리로 인해 점점 그 이념이 퇴색되었으며 실패한 실험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변질된 전체주의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부정하며 유물론적 사상으로 무장한 국가들이 대부분 빈국의 나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사람이 만든 이론으로는 이상적 세상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논리를 따라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얼마든지 윤택한 삶을 누릴 자유를 갖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리에 따른 책임을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덕목은 함께 나눌 수 있는 긍휼한 마음이다. 다른 말로 사랑이며 기독교의 기본 진리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으며 이것을 실천할 때 세상은 풍요로워지고 따뜻해지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며 저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긍휼의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한국교회가 앞장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사랑이 없는 사회는 원망과 불평과 시기 질투 미움이 자라나는 토양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필자는 국제아트프로젝트에서 퍼포먼스를 발표했다. 제목이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였다. 성경 속 예수님의 말씀 중 구제를 할 때는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알리지 말고 하라는 뜻을 패러디한 것이다. 

내용은 이렇게 전개된다. 양복을 입고 무대에 선다. 오른손에는 가위를 들었다. 필자는 가위를 든 오른손으로 왼손 옷소매를 잘라내기 시작한다. 점점 왼손 옷소매가 잘려 나가 반팔처럼 되었다. 오른팔 옷소매는 멀쩡한데 왼팔 옷소매는 갈기갈기 찢기어져 있었다.

호기심에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필자는 관객들의 손바닥에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손바닥에 찍힌 글은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이다.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에 대해 강한 것이 약한 것에 대해 행한 행위로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한 것이었다. 억압과 착취, 갑과 을의 관계, 힘의 논리로 정당화되는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한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은 한 몸이며 한 지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한다. 전 세계가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란 말이다. 지구 곳곳에는 전쟁 속에 아픔을 당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오른손과 왼손이 한 몸이라는 지체임을 아는 민감성을 느껴야 한다. 왼손의 고통은 얼마 후 오른손으로 전달되는 한 몸과 같은 세상이란 것을 망각하지 않길 바라는 담론을 던지고 있다.

최근 월드컵을 보며 한 마음으로 한국 축구 대표 선수들을 응원했다.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 16강의 쾌거를 이루며 국민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던 일을 기억한다. 목표가 하나여서 우리의 동질성이 극대화됐던 순간이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미움과 다툼이 어디 있을까. 진영 논리가 다름으로 인해 다툼과 미움으로 양분된 요즘의 세태를 바라보며 같은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 그리워진다. 

성탄의 계절이다.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긍휼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던 꿈 같던 시간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 

방효성 장로

<송학대교회,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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