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그날은 내 친구 형주의 생일이었습니다. 형주와 저녁을 함께 하고 늦은 밤 시간에 형주와 함께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에 탄지 30분쯤 지났을 때, 형주가 말했습니다. “소변이 급해…” 종로 3가에서 내려서 무작정 큰 건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은 3층에 있었습니다. 사방이 어두웠습니다. 화장실 표시도 겨우 보였습니다.
화장실 앞, 어두운 복도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은 여자가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서 씀바귀 꽃처럼 앉아있었습니다. 한 겨울인데도 그녀는 여름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두 눈을 꼭 감은 그녀는 누더기 같은 외투로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엄마 품에서 아기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화장실을 나왔을 때도 아기 엄마는 눈을 꼭 감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형주는 아기 엄마 옆으로 조심조심 걸어갔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케이크를 아기 엄마 옆에 살며시 내려놓았습니다. 케이크 상자 위에 천 원짜리 몇 장도 올려놓았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누군가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기 엄마였습니다. “저….. 이거 두고 가셨는데요.” 케이크 상자와 천 원짜리 몇 장을 손에 들고 아기 엄마는 착하디착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저희 꺼 아닌데요.” 형주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조심 말했습니다.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형주는 차비까지 몽땅 털어 아기 엄마에게 주고 왔습니다. 우리는 종로에서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걸었습니다. 형주는 맨 양말 바람으로 엄동설한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여름 슬리퍼를 신고 추위에 떨고 있는 아기 엄마에게 형주는 신발까지 벗어주었습니다. “형주야…” 나는 목이 멨습니다. 형주는 소년처럼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 발. 이. 좀. 작. 잖. 아. 히히.” 이 아홉 글자를 말하는 것조차도 내 친구 형주에겐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형주는 중증 뇌성마비 환자였습니다.
나는 서른 살이 넘어 결혼을 했습니다. 나의 결혼식 날,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급히 올라왔습니다. “해남에서 올라오는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이를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버렸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습니다. 형주 아내의 등에는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아기가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철환아, 형주다. 나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리어카 사과 장사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아내의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나의 맘은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었습니다. 나는 친구아내 앞에서 사과 한 개를 꺼냈습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뭘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새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참으려 해도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어깨를 들먹이며 나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 글은 『연탄 길』이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이철환 작가의 글입니다. 이 글을 읽다보니 저절로 간구의 기도가 나옵니다. “주님,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가난은 인류가 극복해야 할 숙제 목록 중의 하나입니다. 가난하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주님 친히 도와주시옵소서. 비록 가난하지만 착한 이 영혼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님이 베푸시는 평강의 은총이 이들 위에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