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아침에 간간이 흩뿌리던 눈이 이제는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있다. 사방은 온통 하얗고 고요한 적막으로 휩싸인 가운데 하늘을 찌르는 나목들이 축복처럼 내리는 눈송이를 환영하는 것만 같다.
코로나 확진 통지를 받고 시골집으로 내려온 바로 다음 날 눈 속에 갇히게 되었으니 난감한 마음이었지만, 다시 생각하니 이 따뜻하고 고요한 정취가 뜻밖의 선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연말의 모임 약속으로 분주한 12월에 코로나 감염으로 뜻하지 않게 오롯이 일주일의 보너스 휴가를 받아든 기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코로나는 그저 감기 정도라고 하니 더더구나 코로나가 가져다준 축복이 아닐까 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눈 속에 갇혀 벽난로 앞에서 사색에 잠긴 끝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듯이, 혹은 과학자 뉴턴이 흑사병을 피해 머물던 시골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듯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올지도 혹시 모를 일이다.
역사상 대사건으로 기록될 코로나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우리의 마음은 인간, 생명, 우주에 대한 상념으로 가득한데, 마침 독일의 젊은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책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는 지금 읽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다.
가브리엘은 여러 측면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 질서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하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코로나 위기를 통해서 인류의 의식혁명이 일어나고 윤리적 진보를 가져올 것이라는 긍적적인 예측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 창궐은 동물 서식지 파괴로 인해 인간과 야생의 빈번한 접촉으로 발생한 것인 만큼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확실하게 일깨워주었다. 더 많은 소비와 더 빈번한 여행을 즐기고자 하는 끝없는 욕망의 충족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화석연료로 인한 기후변화와 현상도 코로나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갑자기 깨닫고 있다.
사람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면서부터 기업의 행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브리엘의 예측이다. 예컨대 닌텐도가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 판매하는 게임기의 가격을 대당 2만 원씩 올려, 그에 따른 추가 수익을 가난한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무료로 바이러스백신을 공급한다고 해보자. 현명한 소비자라면 이러한 닌텐도의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기꺼이 동참하려고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도덕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약간 희생하더라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그런 윤리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ESG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ment)의 약자로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준수하면서 기업활동을 하는 윤리경영이 코로나 이후에 더욱 강조될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의식혁명이 일어남으로써 자신의 이익추구에만 몰두하면서 무한경쟁에 몰입하는 천민적 자본주의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게 되고 윤리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자본주의로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예측은 더없이 반가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코로나와 같은 위기가 앞으로 분열과 갈등을 더 조장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
결국 사랑과 은혜의 기독교 정신이 충만할 때에야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창밖에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이 우리 사회를 더 따듯하게 하는 긍정적인 소식을 기대해 본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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