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를 위해 한국일보를 찾았다. 지하철을 이용해 안국역에 내려 지하도 계단을 급히 올라가고 있었다. 한겨울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걸음을 재촉했다. 정신없이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 중간 지점에 80대 할머니 한 분이 추위에 떨며 구걸을 하고 계셨다. 그분의 행색은 너무나 초라했고 그 얼굴에는 지난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짙은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지갑을 열고 돈 몇 만 원을 드리고 발걸음을 급히 재촉했다. 기자를 만나 한참 동안 미팅을 한 후에 좀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지하도 계단을 내려왔다.
시간이 꽤 지난 후였는데도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모습이 조금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적어도 가장 불쌍한 모습, 가장 간절한 몸짓이어야 그나마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텐데 이 할머니는 연신 담배를 빨며 보란 듯이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조금 큰돈을 주었다고 생각했기에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한마디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
“할머니! 이렇게 담배를 피우고 계시면 어쩝니까?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돈을 주겠습니까?”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구걸을 제대로 못할까 하는 염려의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는 좀 진정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을 탓하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내 말을 들으며 담배 연기로 깊은 고통의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 고인 눈으로 한참 나를 쳐다보다가 어렵게 말을 시작하셨다.
“여보시오, 당신이 내 심정을 알기나 해요? 이렇게라도 숨을 쉬지 않으면 가슴이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소. 자식도 다 잃고 어디 있을 곳도 없는 내 심정을 당신이 어떻게 안단 말이오!”
잠시 망치로 맞은 것같이 멍했다.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몇 푼 도와줬다는 그 알량한 교만의 마음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어떻게 해야 할머니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할머니!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할머니의 건강이 염려되어서입니다. 담배 피우시면 건강을 많이 해칩니다. 앞으로 건강을 위해서 피우지 마세요.”
그러고는 조금이라도 마음에 위로가 되도록 다시 지갑을 열어 가진 돈을 전부 할머니에게 쥐어 드렸다. ‘건강하세요’ 한마디를 남기고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내 뒤통수를 향해 할머니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복 받으시오, 복 많이 받으시오!”
할머니의 외침은 끝이 없었다. 내가 할머니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할머니의 외침은 계속 들려왔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