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4:23, 25:11
사람의 한 치도 안 되는 혀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절망을 줄 수도 있고 희망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어느 교회의 장로님은 열심히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장로님 부부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아들은 사랑했지만 둘째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큰아들에게 모든 기대를 다 걸었다. 그러면서 둘째 아들에게는 우리 집에서 없어야 할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하대하며, 학비도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다.
어느 주일날 아침, 장로님 부부가 자고 있는 둘째에게 “일어나서 얼른 교회에 가라. 너는 우리 집에 없어야 할 사람이니 내 눈앞에 보이지 마라”라고 말하고 교회에 갔다. 이 말에 심한 충격을 받은 둘째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가 믿는 그 예수를 나는 믿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가 장로입니까? 어머니가 권사 맞습니까?’라는 유서를 써 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말 한마디가 아들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말이란 위력이 크다.
내가 어려서 잠시 친척 집에 있는 동안 엄청난 욕설을 들었다. ‘급살 맞아 죽어라, 칼을 입에 물고 엎어져서 죽어라, 귀신아 저놈 잡아가라’ 등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 표현하기조차 끔찍한 욕과 저주의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무서운 악담과 욕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협력해 선을 이룬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이 모든 것이 내게 유익한 것이 되고 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뱃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말, 내면의 영혼에서 나오는 말은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돈 들이지 않고 용기를 주고 기쁘게 하는 것은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말이다. 왜 가슴속에서 나오는 말이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말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진실과 정성과 인격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가 지성과 로고스(logos)를 상징한다면, 가슴은 덕성과 양심을 상징한다. 가슴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다. 그래서 가슴속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 말이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을 감동시키려거든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진실과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
희망을 주는 따뜻한 가슴이 되려면 그 가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기도로 채우고, 선한 삶으로 채우고, 헌신으로 채워야 한다. 이때 자연히 희망의 말, 선한 말이 솟아나기 마련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잠언 4장 23절에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했고, 25장 11절에서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라고 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내 인생을 돌아보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때마다 많은 스승님들이 “선태는 능히 할 수 있어. 선태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거야”라고 격려해 주셨다.
친구들도 나를 도와주면서 “너의 열정에 우리가 도전을 받는다”라고 하고 나를 격려해 줄 때마다 나는 삶의 의욕과 열정이 다시 솟구쳐 올랐다.
선한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말, 따뜻한 말, 사랑의 말, 선한 말, 아름다운 말을 함으로써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은 희망과 아름다움을 이루며 살아갔으면 한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