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네팔의 에베레스트(8,848m)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높은 산이 없다. 기껏해야 백두산이 해발 2,744m이다. 그러나 산도 아니면서 그 옛날 우리 민족이 넘어야 했던 보릿고개는 이보다 높았고 이를 넘지 못해 죽어간 사람들이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황금찬 시인은 우리나라의 보릿고개 높이를 해발 9,000m라고 했다. “코리아의 보릿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이 보릿고개를 해결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는 18년간의 오랜 통치 속에서 독재자로 군림하기도 했지만, ‘해발 구천 미터’의 보릿고개를 일구어 누구나 넘을만한 야산으로 만든 공적도 있다. 그는 1964년 12월 7일 서독방문 길에 오른다. 박 대통령을 환영하는 행사장을 메운 사람 중에는 서독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많았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언제나 잘살아 봅니까?”라는 한 교민의 질문에 그는 “조국이 가난해….”라고 하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자 모든 사람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한때 우리는 부자의 대명사로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말을 썼던 적이 있다. 그런데 100만 달러의 가치는 약 12억 원 정도이다. 웬만한 서울의 집 한 채 값이다. 우리나라 2016년 통계 기준으로 이 정도의 돈이 있는 백만장자는 2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케이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2 한국 부자 보고서’에 의하면 10억 이상을 가진 백만장자가 42만 4천 명이라고 한다. 6년 만에 두 배가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10억 원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제 백만장자의 기준은 10억 원이 아니라 100억 원 정도의 재산가를 일컫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의 여파로 금리가 올라가고 가계소득이 줄고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기업이 공장 문을 닫아 실업자가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보릿고개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풍요 속에 빈곤이 자리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불과 50년 전 보릿고개에 비하면 요즘의 삶은 정말 풍요롭다. 모두가 백만장자이다. 빈곤의 시대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풍요의 시대도 항상 곁에 있었다. 감옥 속에서도 자족함의 비결을 배우고 기쁨과 감사와 찬송을 잃지 않았던 사도 바울의 신앙이 그립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