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포도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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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3월 초순의 어느 날, 남루한 복장의 40대 초반의 여인이 일본 「다카시마야(高島屋)」 백화점 지하식품부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포도송이가 놓인 식품코너 앞에 서더니 한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식품부 여직원은 포도 앞에서 울고 있는 아주머니가 이상해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왜 우시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말하기를 “저 포도를 사고 싶은데 돈이 2천 엔밖에 없어 살 수가 없어서 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송이가 매어달린 포도의 값은 무려 2만 엔이었습니다. 그런데 고객은 2천 엔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고객에게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후 그녀는 가위를 가져와 2천 엔어치를 잘라서 포장지에 곱게 싸서 여인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달 후인 1986년 5월14일자 일본의 ‘마이니치(毎日)’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한 독자의 투고기사가 실렸습니다.

“우리에게 신(神) 만큼이나 큰 용기를 준 「다카시마야」 식품부 여직원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내가 치료 하던 11세의 여자아이는 비록 죽었으나 마지막 소원인 포도를 먹을 수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백혈병 환자로서 더 이상 치료 해봤자 회생의 여지는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포도가 먹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을 어머니는 너무 가난해서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소원을 「다카시마야」 여직원이 들어준 것이다.”

기사의 내용인즉, 도쿄의 변두리 단칸방에 살던 두 모녀가 있었는데 11세 된 딸이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마지막 소원이 포도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포도를 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때는 3월, 아직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어디에도 포도는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에 포도를 발견한 곳은 일본 최고의 백화점인 「다카시마야」  백화점 식품부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전 재산은 2천 엔이었고 두 송이가 매어달린 포도의 가격은 2만 엔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으나 가진 돈이 없어 하염없이 울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백화점 식품부 여직원이 그 모습을 보고 가위를 가져와 과감하게 포도를 잘라서 판 것이었습니다. 포도송이는 2천 엔어치를 잘라내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그 여직원은 “손님을 차별하지 말고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라”는 백화점의 방침에 따라 과감하게 잘라서 판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자칫하면 그냥 묻혀버릴 수 있었으나 어린아이의 백혈병 치료를 담당하던 의사가 그 사연을 신문의 독자란에 투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은 1천만 명의 ‘도쿄’ 시민들은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다카시마야」 백화점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일본 최고의 백화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습니다. 백화점 측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정으로 고객을 위한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한 신뢰(信賴)’ㅡ 그것은 목숨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신용사회”라고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컴퓨터로 제어되는 시대이며 사람들은 서로 대면하지 않고도 물품구매와 금융거래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개개인의 ‘신용’이 중요시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용’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공동체라고 봅니다. 성경말씀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 1:17)”라고 했는데 여기에 나오는 ‘믿음’이 세상적인 용어로 말할 때 ‘신용’이며 ‘신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고백했던 에스더,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당신의 우상에게 결단코 절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를 능욕하던 골리앗을 향하여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소리치며 물맷돌을 들고 나갔던 소년 다윗이 생각납니다. 이들은 모두 어려운 환경과 박해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무한 신뢰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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