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한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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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소개하는 한시(漢詩)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죽은 형을 그리워하며 읊은 시이다. 먼저 원시(原詩)의 내용을 살펴보자.

「憶先兄(억선형)」 → 죽은 형을 추억하며.

  我兄顔髮會誰似(아형안발회수사) → 내 형님의 얼굴과 머리털은 누구를 닮았던고/ 每憶先君看我兄(매억선군간아형) →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날 때마다 우리 형님을 보았다오/ 今日思兄何處見(금일사형하처견) → 오늘은 형님이 그리운데 어디서 뵙는단 말인가/ 自裝巾袂映溪行(자장건몌영계행) → 스스로 의관(衣冠)을 갖춰 입고 시냇물에 비춰보며 걸어가네. 

*[어귀해설] *선형(先兄): 죽은 형. *안발(顔髮): 얼굴과 머리카락. *회수사(會誰似): 누구를 닮았나. *선군(先君): ①선대(先代)의 임금. ②돌아가신 아버님(=先親). *여기서는 ②의 뜻. *하처견(何處見):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자장(自裝): 스스로 의관(衣冠)을 갖추다. *건몌(巾袂): 두건과 소매, 곧 의복(衣服). *영계행(映溪行): 시냇물에 비춰보며 걸어가다.         

이 한 편의 시는 연암 박지원이 황해도 금천 연암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면서 쓴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시이다. 돌아가신 선친을 뵙고 싶으면 형님의 모습을 보곤 하였는데 지금 형님이 죽고 없으니 “자신의 모습을 개울물에 비춰보며 형의 모습을 본다”는 따스한 핏줄을 연상케 하는 시이다. 형제는 어느 한구석엔가 닮은 데가 있게 마련이다. 하물며 부모님이랴! 

살아생전에 극진하게 효도하지 못했던 자식은 부모님 돌아가시면 더욱 뉘우치게 된다. ‘부모공경 형제우애’라는 동양적 ‘효사상’이 우리의 핏속에 맥맥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시인 연암 박지원도 그랬던 모양이다. 형님의 얼굴과 수염이 돌아가신 아버님을 꼭 빼 닮았다고 했다. 선친의 수염을 꼭 빼닮은 형님 얼굴을 보면 부모님을 뵙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형제는 어딘가 꼭 빼닮는다는 것이 우리들의 관념이고 사회적인 통념이었다. 도도(滔滔)한 맥박 속에 효도와 우애가 여실히 흐르는 것을 두 눈으로 보는 듯하다. 이 얼마나 애틋한 형에 대한 그리움인가! 

화자(話者) 연암에겐 형님이 돌아가셨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직 상상 가능한 한가지 방법은 형님처럼 의관(衣冠)을 갖춰 입고 냇가에 나가 냇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냇물 속에 비춰진 자기 얼굴을 통해 형님을 뵙겠다는 뜻이다. 피를 나눈 피붙이들은 서로 닮기 마련이다. 형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 시를 읽다보면 사람은 가족 속에서 태어나 살다가 세월이 가면 그들과 헤어지고 다시 자신의 2세와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야하는 숙명을 가진 존재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학부시절 같은 학과에서 동문수학(同門修學)하던 오탁번(吳鐸藩, 1943~ ) 시인이 쓴 수필 중에 『장모(丈母)』라는 작품이 있다. 시인은 어느 날 문득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안방에서 책을 읽고 계시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하마터면 “아니, 장모님이 웬 일이십니까”하고 큰 소리로 외칠 뻔 했는데 다시 보니 그 노인은 옛날의 장모님처럼 이미 늙어버린 시인의 아내였다고 했다.

이건 우리 형제의 이야기여서 좀 쑥스럽지만 옛날 내가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제자 중에, 훗날 미국에서 목회하던 문정선 목사를 보고 “혹시 문정일 선생님의 동생이 아니신가요?”를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연전에는 반대로 우리 동네 장터에서 물건 값을 묻는 내 음성을 듣고 곁에 있던 한 여자 전도사가 “혹시 문정선 목사님을 아시나요?”라고 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유년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율동을 위한 《닮은 꼴 가족》이란 찬양이 있는데 그 노랫말이 이렇다. “엄마는 실로에서 기도하던 ‘한나’를 닮고요. 아빠는 민족을 해방시킨 ‘모세’를 닮았죠. 누나는 씩씩하고 의로운 ‘다말’을 닮고요. 나는, 나는 축복받은 씨름 선수 ‘야곱’을 닮았죠. 여기 닮은 사람 있나요? 아니, 아니 없어요. 하지만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만은 꼭 닮은 꼴이죠.” 

맞는 말이다. 남남으로 태어난 사람으로 서로 닮은 사람은 별로 없게 마련이다. 남남인 우리가 서로 꼭 닮아야 하는 것을 한 가지 말하라면 위의 노랫말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말하고 싶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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