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결단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국가 원로들이 찬성하기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반대를 넘어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매국 행위로 대통령을 탄핵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와 걷잡을 수 없는 국론 분열에 빠졌다. 이는 물론 대일 외교 문제에 대한 정책대립이기보다는 대통령에 대한 찬반 감정의 표출이고 국익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정파적 이해관계 문제이고 여론 주도권을 위한 자기 논리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지금 우리의 대일 외교 문제는 국익보다는 국가 권력의 주도권을 위한 의도적 대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정치적 목적으로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겼던 전 정권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런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 판단으로 이 문제를 바라고 어떤 기도로 나라를 염려해야 할 것인가?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하는 동시에 우리는 실제로 우리의 국익, 그리고 이 나라의 안정적 발전과 국제 사회 속에서 나라의 품위를 지키고 국가 이미지를 높이며 나라의 미래를 위한 실리적인 면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야비한 방법으로 국권을 빼앗고, 혹독한 탄압으로 국민을 짓밟은, 목사 장로를 마치 노예처럼 끌고 가서 신사참배를 시켜 교회 지도자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그들, 제암리교회에서처럼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서 서슴없이 교회에 불을 질렀던 그들이기에 영원히 용납해서 안 되고 절대로 손잡을 수 없고 그 후손들까지도 영원한 원수로 삼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제 우리는 새 시대를 향해 넓은 아량으로 포용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슴을 열어야 하는가?
사실 지난날 우리는 절대로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반성 보다는 아직도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우기고 강제징용이나 정신대 등 억울한 피해에 대해 정당한 보상에 소극적인 그들을 용납할 마음이 없었다. 어쩌면 아직도 과거의 불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얄미운 그들을 용납하고 국제 무대의 동반자로 손을 잡기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자신의 자의식, 우리 자존심이다.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우리가 해방된지 8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문화적으로 이제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가지는 우리가 아직까지 분노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적대감을 가슴에 품고 옹졸한 마음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는가? 아직까지 반일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구원(舊怨)에 사로 잡혀서 죽창가나 부르고 있어야 할 수준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지난 날에는 그랬다. 도저히 이길 힘이 없으니 반대라도 해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킬 수가 있었고 더 이상 당하지 않기 위해 역부족이지만 죽창이라도 잡을 결기라도 필요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린 그럴 수준은 지났다. 이젠 일본을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넘어서야 한다. 힘이 없을 때는 더 이상 얻어 맞지 않기 위해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용납할 수 없고 덤벼들어 싸우기도 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들을 넘어서야지 그들과 싸울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소인배의 정서를 극복하고 더 어른다운 태도로 용납하고 때로는 받아 주어서 대립이 아니라 수용하고 때로는 이끌어가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반일(反日)이 아니라 극일(克日)로 그들보다 우위에 서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제사회에서도 일본에 대한 우리의 포용의 자세를 두고 우리가 일본에게 “비굴하게 빌붙고 고개숙인다”고 보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도리어 크고 의젓한 태도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영원히 적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속 좁은 태도로 국제 사회를 선도할 수 없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고 그것이 정말 강하고 어른스러움이다. 언제까지 피해의식에서 분노하고만 있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이 먼저 회개하고 반성한다면 좋겠지만 회개도 반성도 능력이다. 회개하고 반성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손을 내 밀어 주자. 사실 원수를 곁에 두고 있으면 상대보다 내가 아프고 더 힘들다. 강한 자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다. “지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말은 지금도 진리이다. 이제 일본 보다 우리가 더욱 당당해야 한다.
이만규 목사
<신양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