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음에서 얕은 음으로 그러다가 다시 높은 음으로 하나도 힘들지 않게 오르내리는 음성에 가사는 비록 몰라도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 서너 곡까지의 얘기지 20분 정도가 지나자 덕수는 졸리움의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지금 졸아서는 안된다. 절대로 졸아서는 안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졸지 말아야지 졸았다가는 위신이고 체면이고 개망신을 하는거야’ 덮쳐오는 졸리움을 밀쳐 내느라고 온갖 힘을 다하고 있었다.
바른쪽 벽에 붙어있는 파이프오르간을 보고 천장의 조명 등을 쳐다보고 그리고 아래층 청중들을 내려다 보고는 힐끗 곁눈질로 아들 며느리의 표정을 살펴 보기를 수십 번. 역시 며느리는 성악을 전공한 사람답게 심취한 모습에 진지함이 넘쳐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얼굴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게시시한 얼굴로 아래층 청중들을 내려다 보면서 인원수라도 헤아리고 있는 것인지 좌우로 훑어보고만 있었다.
‘하긴 컴퓨터를 전공한 너나 건설업을 하고 있는 나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지’ 정말로 마누라 말마따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처신을 할 것이지 위신이고 체면이고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애들 앞에서 난척을 하려다가 이지경이 되었으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원 세상천지에 시아버지 눈치를 본다는 얘기는 흔히 들었어도 며느리 눈치를 본다는 시아버지 얘기는 들은 적이 별로 없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좀 눈치 빠르게 ‘네 알았습니다.’ 하고 아들 녀석이 곁에만 와서 앉아 주었더라도 마음 놓고 하품을 하거나 졸기도 할 수가 있었으련만 내가 부른 ‘산타루치아’에 감동을 받았다는 새며느리 옆에선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새며느리가 들려 주리라던 해설은 하지 않았다. 아마 음악을 아시는 분에게 해설이란 주제넘는 짓이라고 생각이 되어 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하고 지리한 음악회가 끝났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화제목이 ‘가장 길었던 날’이었던 게 떠올랐다.
덕수는 차에 올라타고 얼마쯤 달려가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가야 이태리 가곡은 언제 들어도 역시 명곡이야.” “네 그렇습니다. 아버님!” “산타루치아나 오 솔레미오나 베사메무쵸가 다 기가 막힌 곡들이야….”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운전하던 아들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버지 베사메무쵸는 이태리 민요가 아닐텐데요? 안그래 미나야?” 이 순간 덕수는 아찔했다.
입이나 꼭 다물고 있었더라면 참았던 보람은 물론이요 그런 대로 본전은 챙길 수가 있었을 것이었다. ‘기어코 그놈의 알량한 위선과 체면 때문에 개망신을 당하는군.’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