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실 때 자음(ㄱㄴㄷㄹ)만이 아니라 모음(ㅏㅑㅓㅕ)도 만드신 것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만일 한글에 모음이 없이 자음만 있다면 ㄱㄹㅇㄹ ㅇㄹㄱㄱㄱ ㄷㄷㄴㅎ ㅇㄹㅇㄹ ㄱㅅㅇㄷ. (글을 읽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구약이 기록된 히브리 문자는 원래 자음으로만 되어있다. 모음이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 특별히 교육받은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은 자음으로만 쓰여진 히브리 성경을 읽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주전 722년), 남유다왕국도 몰락하고 (주전 586/7년),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지속되어 내려오는 동안 히브리어는 사어(死語)가 되었고 서기관이나 제사장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자음으로만 쓰여진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일반 유대인들은 읽을 수 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오직 극소수의 유대교 랍비, 학자들만이 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교 학자들 사이에서는 모음자를 고안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기 500년대 들어와서 모음자를 고안해내려는 운동이 바벨론 지역과 이스라엘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바벨론 지역에서 고안해낸 모음자 체계는 너무 복잡하고 배우기가 어려워 유대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디베리아에서 고안해낸 모음체계는 간편하고 배우기가 쉬워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표준적인 히브리어 모음체계로 정착되었다. ‘디베리아 모음체계’는 점(點)의 형태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은 ‘이,’ ●●는 ‘에’ 하는 식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모음을 ‘모음점’(vowel point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음점’이 첨가된 히브리 성경을 ‘마소라 성경’(Masoretic Text, 약어 MT)이라고 부른다.
갈릴리 호숫가에 세워진 도시 ‘디베리아’는 역사적으로 중세 시대 이후부터 유대인 학자들의 활동이 활발하던 곳으로 많은 유대인 학자들을 배출했다. ‘디베리아’에서 히브리어 모음체계를 고안해낸 작업의 중심에는 ‘아셀’(Asher) 가문이 있었다. 이 유대인 학자 가문은 5대에 걸쳐 내려오면서 히브리어 모음자를 고안해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5대째 와서 모음자 체계를 완성시켰고, 이렇게 완성된 모음자를 첨가해 히브리 성경의 결정판 필사본을 세상에 내놓았다. 대를 이은 성업을 완성시킨 인물은 ‘아론 벤 아셀’(Aaron ben Asher)이었다. 그가 완성한 모음이 첨가된 히브리 원문 성경(즉 MT)이 유명한 ‘알레포 사본’(Codex Aleppo)이다.
오늘날 세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3대 MT는 알레포 사본, 레닌그라드 사본, 그리고 최근 경매 시장에 나온 ‘사순 사본’이다. 이 셋 중에 사본의 내용이 학계와 세상에 공개되고 활용되고 있는 것은 ‘레닌그라드 사본’이다. 이 사본의 연대는 서기 1008년에 필사된 것으로, 구약성경 39권 모두가 빠짐없이 들어있는 MT사본이다. 이 사본은 오늘날 구약성경을 원문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원본으로 사용되는 귀중한 사본이다. 1859년 제정 러시아가 당시로서는 거금 2500루블에 구입해서 피터스부르그에 있는 도서관에 보관했다. 러시아가 공산화된 후 이 도시 이름이 레닌그라드로 바뀌었고, 지금은 본래 지명을 회복했지만 이 사본을 계속 ‘레닌그라드 사본’이라고 부르고 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