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종소리] 비전이 아니라 부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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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비전이라는 단어가 부르심이라는 단어를 삼켜버린 것이 신앙의 위기이다. 참된 신앙인은 자신의 비전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비전이라는 단어가 필요없다. 부르심을 따르는 삶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반드시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루터는 폭풍가운데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경험하고 무릎을 꿇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부드럽게 안내하시는 것이 아니라 떠미시며 잡아 이끄신다. 그러기에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났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불안하고 괴로운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파스칼은 당대 가장 뛰어난 수학자요 철학자였다. 그가 어느 날 마차에서 떨어져 죽을 뻔 하였다. 이 경험이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깊은 정신적인 고통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파스칼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계신 분명한 증상일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테스트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자신이 그 부르심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견딜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 되어진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포기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 부르심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부르심에 순종한 것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는 사람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기 때문이다. 부르심에는 내가 순종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부르심이란 우리가 강제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언젠가 생겨날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인간들이 가진 능력이나 자원이 전혀 고려요소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과 정반대가 될 때 하나님은 더 주목하신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또한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면 부르심이 아니다. 부르심은 나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르심은 선택을 초월한다. 내가 그것을 하려고 선택한 것은 부르심이 아니다. 부르심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부르심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셔서 하도록 만드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고난, 어떤 시험이 다가와도 부르심은 이루어지고야 만다. 두 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스스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 더 발전되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능력으로 그 부르심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자신과 사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자녀가 없는데 큰 민족을 이루고, 멀리 갈대아 우르에서 이민온 가정인데 가나안에서 창대케 되고,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힘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받아들여 동정녀 탄생을 이루는 부르심을 이루어 메시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룻기의 주인공 룻이라는 여인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온 것이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증거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기대하지 않았던 상급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으로 다가온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는 순종하고야 말도록 만들어가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포기될 수 없는 부르심이다. 그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최대 행복이요 영광이요 기쁨인 것이다.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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