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엄상익 변호사가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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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에서 퇴직한 친구들 몇 명과 모임이 있었다. 그 중 한 친구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비록 1급 공무원밖에 못 했지만 말이야…” 다소 기가 꺾여있는 듯한 그의 옆에는 장관 출신 친구가 앉아 있었다. 1급 공무원이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고위직 공무원이다. 그러나 그는 장관을 한 친구를 의식하고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장관을 했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장관 넉 달 만에 쫓겨났어. 엊그제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그때 데리고 있던 부하를 만났는데 나보고 의아한 얼굴로 “장관님도 지하철을 타십니까?”라고 묻더라구. 장관 괜히 한 것 같아. 그것 때문에 사는데 오히려 부담이 돼…”

장군으로 예편을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장군을 했는지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 해. 아스라한 옛날에 ‘병정놀이’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한번은 재벌그룹의 노(老) 회장과 얘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조선 최고 부자의 아들이었다. 해방 후에도 삼성에게 자리를 빼앗기기 전에는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를 자랑했었다. 내가 그를 ‘재벌 회장님’이라고 하자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재벌은 무슨? 구멍가게 수준이지…” 재계 서열에서 밀려난 불편한 심기가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지위가 높거나 재벌인 사람들의 대다수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마음들이 공허해 보였다. 하지만 의외로 행복한 사람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임대아파트에서 폐암으로 혼자서 죽어가던 ‘강태기 시인’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창문을 열면 아침 햇빛을 받은 이슬 맺힌 호박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누가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했나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요. 동네 초등학교에서 남은 밥도 가져다주고 성당에서 반찬도 가져다 줘요.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하는 분이 와서 목욕도 시켜줘요. 감사하고 또 감사한 세상입니다.”

내가 만났던 ‘강태기 시인’은 자동차수리공을 하던 청년 시절, 두 일간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문학적 천재였다. 그러나 가난과 고독 그리고 병이 그의 삶이었다. ‘귀천(歸天)’이란 시로 유명한 ‘천상병(千祥炳) 시인’은 “이 세상 소풍이 즐거웠다”고 시에다 썼다. 

변호사인 나는 감옥에 있는 수형자에게서 행복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소년 시절부터 20년이 넘게 억울한 징역을 산 사람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비가 촉촉하게 오는 날이면 높은 회색 콘크리트 담 밑에 나있는 잡초를 보면서 걷고 싶어요. 바로 그게 눈앞에 보이는 데도 걸을 수 없는 게 감옥살이예요.” 그가 몇 년 후 석방이 되었다. 나는 그가 소원이라고 하던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뒷골목 식당에서 사주면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밤에 뒷골목을 산책하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쓰레기가 널려있고 신문지가 휘날려도 나는 좋았어요.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말이죠.” 

길거리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걸 보았다. 속으로 “당신들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감옥 독방에서 벽을 바라보고 있어 보세요. 싸울 사람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행복인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많은 행복할 것 같은 사람들은 불행했다. 그들의 시선이 위만 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시선이 아래를 향한 사람, 그리고 내면에 있는 영혼의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었다. 이 세상에는 소풍 온 사람도 있고, 욕망의 진흙탕에 빠져 허겁지겁 살다 가는 존재도 있는 것 같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문 장로는 최근에 이르러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면서 예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감사를 새삼 경험하게 된다. 80대 중반이 되어서도 맑은 정신을 허락하신 하늘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다. 주님이 동행하신다는 작은 믿음이 기쁨과 안위(安慰)의 원천이 되는 것 같다.  

최근 친구가 보내준 엽서에서 귀한 글귀를 발견했다. “당신이 ‘혼자’ 달리면 그것은 ‘달리기(Race)’이지만 ‘주님’이 당신과 함께 달리면 그것은 ‘은혜(恩惠=G+race)’가 됩니다”(When you run alone, it’s called ‘Race’. And when ‘God’ runs with you, it’s called ‘Grace’.)라는 명언이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주님과 동행함으로 우리의 삶이 단순한 ‘달리기(Race)’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은혜(G+race)’가 되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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