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작게는 10인 미만에서 최대 24인승까지 있는데 대부분 노약자를 위해 20초를 기다려 문이 닫히게 맞춰져 있다. 보통 닫힘버튼을 눌러도 반응하지 않지만 열림버튼 말은 잘 듣는다. 매일 역구내 E/V를 타고 오르내리노라면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를 거기서 조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해법도 찾아진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드나드는 데는 어떤 선별기준도 없지만 각자의 처지에 따라 편이 갈라진다.
E/V가 올라와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타면 스르르 문이 닫히는데 뒤늦게 타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공간이 있어 안에 있는 사람이 재빠르게 열림버튼을 누르거나 문에 손을 뻗어 정지시키고 늦은 사람을 태워주는 친절을 베풀면 그 사람은 ‘고맙습니다’하며 얼른 올라타고 승강기가 움직인다. 아름다운 정경이다. 하지만 불평의 소리가 사람들 가운데서 들리기도 한다.
‘만원’ 표시가 뜨거나 삐소리가 울려 정원초과임을 알리면 맨 나중 사람이 재빠르게 물러나가면 되는데 모른 체하고 버티는 수도 있다. 성미 급한 사람이 ‘나가세요’ 소리치면 모두가 좀 거북스럽다. 그런데 문 안에 서있던 젊은 승객이 얼른 자신의 공간을 양보하고 E/V를 빠져나가 계단 쪽으로 뛰어 가는 모습을 보일 때, 그 순간 이런 사람이 많으면 국가사회가 살기 좋은 곳이 되겠다 느껴진다.
승강기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분명 24인승으로 표시되어 있고 아직 스무 명도 채 안 타서 공간도 넉넉해 보이는데 삐소리가 울려 들어서는 사람을 막는다. 바닥 한편으로 무게가 쏠리면 정원을 덜 채워도 그럴 수가 있으니 균형을 잡고 한두 사람 더 타고갈 수 있다고 믿어 안으로 부득부득 발을 들여 놓는 사람은 먼저 오른 무리에게서 집단적인 반감을 산다. E/V는 원칙적으로 체력이 약한 사람 우선이라는 양해가 있는데 짐도 가지지 않은 젊은이가 나이든 사람이 뒤에 있는데 먼저 승강기에 오르려 하는 것도 보기 딱하다.
기껏 몇 초만 참으면 다 잊고 넓은 공간으로 나가게 되니 괘념치 말아야 할 터인데 예민하게 승강기의 윤리학에 마음이 쏠리게 되는 건 열차 안에서 이미 노약자에 대한 여타 세대의 배려가 날로 희미해져 간다는 생각에 잠겼던 탓이다. 승강기 안에 일시 한 묶음이 된 사람들 사이로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쳐지고 소위 세대간의 대립이 형성되지만 힘들게 일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불편한 마음을 누른다.
고도성장 시대를 지내오고 나서 이들에게는 일자리의 기회도 넉넉치 못한데 또 고령화 사회로 들어가니 노년층의 복지도 자신들이 해결해 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겠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눈앞의 노인들에 자리를 양보하려는 마음이 식어지고 엘리베이터도 먼저 타고 올라가려고 서두르게 되는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국가는 커다란 엘리베이터이다. 먼저 탄 사람들이 소위 기득권층이 되고 나중에 타려는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밖에 있던 사람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안에 있던 사람과 한 편이 되고 서로 연대하여 밖에 있는 사람을 상대하게 된다. 나라는 법과 제도로 이해를 조정하지만 E/V 안에서는 오직 호양의 정신만이 평화로운 하루를 보장해 준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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