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사이가 나빠지면 남보다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과 에서의 후손 에돔의 관계가 그러했다. 야곱과 에서는 이삭과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 형제였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에돔은 한 부모의 피를 나눈 형제민족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에돔의 관계는 분쟁과 피로 점철된 역사였다. 창세기는 이들의 적대적 관계는 뿌리가 깊어 리브가의 모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다.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그들이(=야곱과 에서)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창 25:21-22) 리브가가 너무 괴로워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고 말씀해서, 이스라엘과 에돔의 불화를 기정사실화 하는 말씀을 했다 (23절). 리브가의 태 속에서 싸우던 형제는, 태어날 때도 먼저 나오려고 다투어 야곱은 먼저 모태에서 나온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했다 (26절). 신명기는 에돔 지역을 지칭할 때 ‘너의 동족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이라고 했고 (신 2:4), 에돔 사람을 지칭하여 ‘너의 형제’라고 했다 (신 23:7).
그러나 이스라엘과 에돔은 한 번도 형제애를 나눈 일이 없었다.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에서 약속의 땅을 향해 갈 때, 에돔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이라고 하면서 두 번씩이나 에돔 땅을 통과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에돔 왕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아마도 군대)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의 가는 길을 막았다. (민 20:14-21)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에돔 땅을 피해 먼 길로 우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이 일을 잊지 않았고, 후일 다윗 왕은 에돔을 잔인하게 복수했다. 다윗은 에돔과 싸워 크게 승리했고, 에돔 지역에 이스라엘 수비대를 설치했다. 그리고 군사령관 요압을 6개월간 에돔 지역에 주둔시키면서, 에돔의 왕족을 비롯한 수많은 남자를 죽이게 했다. 이때 에돔의 어린 왕족 하닷은 애굽으로 피신했고, 애굽 왕은 하닷을 받아들여 보호해 주었다. (다윗 왕이 에돔에 행한 가혹한 행위는 에돔의 세력을 꺾고, 그곳을 통과하는 국제교역의 상권을 장악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이 죽자 그동안 애굽에서 장성한 하닷은 에돔으로 귀환하여 반(反)이스라엘 운동을 일으켰고, 솔로몬 왕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삼하 18:13-15; 왕상 11:14-25)
그 후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의 갈등과 불화는 그치지 않았고,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대왕이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에돔 사람들은 바벨론 편에 가담했고 예루살렘 성벽을 훼파하는 일까지 도왔다. 이것은 에돔에 대한 유다 백성들의 가슴 맺히는 원한이 되었다. 이것은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포로민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부른 망향의 노래, 시편 137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예루살렘)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예루살렘 성벽을) ‘헐어버리라! 헐어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버리라!’ 하였나이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