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미식가가 아니다. 무슨 음식이든지 잘 먹고 특별히 좋아하는 메뉴도 없지만, 맛있는 된장찌개나 돌솥비빔밥 한 그릇이면 충분히 행복하다. 기름진 음식이나 값비싼 요리는 외형만 화려하고 익숙치 않은 미각만을 자극할 뿐 오히려 속이 불편했던 경험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의 칠순 생일이라 딸아이가 어떤 고급 식당을 예약했으니 가자는 것이었다. 한남동 어느 식당이었는데 과연 우아한 분위기에 프랑스식 코스요리가 잘 어울리는 아담한 곳이었다. 마음속으로는 동네 적당한 식당에서 함께 한 끼 식사하면 될 텐데 뭐 이렇게 요란을 떨 필요가 있나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딸아이의 정성과 마음도 소중하게 생각되어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고 따라나섰던 것이다.
역시 요리는 훌륭했고 내내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서도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과연 좋은 분위기와 멋진 식사는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하는 만큼, 가능하다면 우리 모두 좋은 음식과 생활환경으로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고급 요리가 취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끔 좋은 분위기와 음식으로 이런 호사를 누린다고 해서 누가 비난할 것인가.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큰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렇게 번 돈으로 헌금도 많이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바람직한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사실 인류가 근대에 들어와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것도 기업가의 창의성과 기술혁신, 그리고 상업적인 성공 때문이다. 비즈니스란 더 좋은 상품을 더 값싸게 공급해서 가치를 창출하고 자신도 이윤을 누리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서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함으로써 자신도 성공하는 부자들의 win-win 활동을 통해서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놀라운 풍요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 고대사회는 달랐다. 고대사회에서 부자가 되는 길은 대체로 권력자가 되어 자신의 노력보다는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방법뿐이었으므로 부자는 윤리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로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현대사회에서 부가 창출되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고 또 모두가 풍요롭게 사는 길이 열려 있다면 부자를 보는 관점도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깨끗하게 돈을 벌어서 교회에 헌금 많이 하고 이웃을 돕는 부자가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청부론(淸富論)이 요즘 기독교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청부론은 서구 사회에서는 오래전에 이미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거부감이 있는 듯하다. 몇 해 전 CBS에서 청부론에 대한 찬반논쟁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기독교인으로서 부를 추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낯설고 불편하므로 청부론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모든 직업은 돈 버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기업의 목표인 만큼 이윤추구를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앞으로는 청부론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말씀처럼 물질적인 풍요에 온 정신이 팔려서 자칫 하나님을 경히 여기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진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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