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서 혀는 작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인생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축복을 받느냐 저주를 받느냐 하는 것은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말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에 곱다”는 말이 있다. 그 예로 상놈이라는 이름을 가진 백정 출신이 푸줏간을 냈는데 장에 들렀던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그 중 한 사람이 양반 습관대로 “얘 상놈아! 고기 한 근 베어라” 하고 명령하듯 말하니 “네, 올리겠습니다” 하며 고기 한 근을 잘라 주었다. 동행한 사람이 자기도 고기를 사고 싶은데 나이깨나 먹은 사람에게 ‘해라’ 하기가 미안해서 정중하게 요청을 하니 상인은 신이 나서 “예 고맙습니다” 하며 선뜻 고기를 잘라주는데 아까 것보다 두 배나 되게 주었다. 먼저 손님이 화가 나서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이 양반 것은 많고 내 것은 왜 이리 적으냐?” 하고 나무라니 상인의 대답이 능청스러웠다. “손님 것은 상놈이 자른 것이고 저것은 서방이 자른 것이라 그렇습니다”고 했다. 서로 상대방을 생각해서 듣기 좋은 말 상냥한 말을 썼을 때 상대방에서 오는 말도 나에게 듣기 좋게 상냥하게 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만난 후 인생이 바뀌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의 삶으로 그 복을 누렸다. 감사는 구원받은 성도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마다 감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억지로 하거나 무성의하게 하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없다. 진정한 감사는 내가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구원해주셨음을 알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죄인이었던 자신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은혜를 부어주었음을 감사하고 있다.
감사의 언어는 주님의 귀한 사명자가 되게 한다. 우리는 직분을 맡을 때 종종 자격이나 능력 없음을 이유삼아 모세처럼 거절하려 한다. 부르심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면 부르심에는 능력을 동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주님이 자신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맡기신 것에 깊이 감사했다. 그는 뛰어난 어떤 능력 덕분에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의 대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에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직분을 맡기셨다. 이것은 그에게 임한 말할 수 없는 은혜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마무리되어 간다고 한다. 수많은 제약속에서 지내온 지난 날들을 뒤로 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언제나 감사의 언어를 사용하는 삶으로 믿음과 사랑이 넘쳐 먼저 믿은 자로 믿음의 본이 되어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본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대원 장로
<서울북노회 장로회 전회장·번동평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