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제발 그 따지는 버릇 좀 버리게.” “아니 내가 못 할 말 했나? 내가 뭘 따져 따지긴! 당연히 할 말을 한거지.” 화가 난 덕수는 창수의 말은 전혀 들리지도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 보험회사의 젊은 여사무원이 무슨 책임이 있단 말이야. 회사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데.” “규정이 뭔데 모두가 다 수긍이 되고 받아 들여져야 하는게지. 자기네만 좋으면 되는게야?” 말이 끊겼다.
창수에게 좀 지나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덕수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낮추었다. “그야 그렇지 젊은 여사무원의 잘못은 아니지.” “그리고 보험도 장사라구. 장사야 밑지면서 할 수는 없는게 아닌가!” “자넨 지금 누구 편을 드는게야? 여보 내 말을 잘 들어 보라구.”
덕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크게 쉬고는 타이르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내 나이 지금 65세야.” “그래서.” “첫마디가 그 연세로서는 생명보험에 드실 수가 없습니다 하니.” “그래서.” “뭘 그래서야! 내 말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묻는 것인데.” 창수는 눈을 가늘게 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생명보험이란 생명을 담보로 한 투기나 마찬가지인데….”
“그러니까 오래 살지 못할 테니까 그만두라 그 말이지?” “장사는 밑지는 것은 안한다니까!” 덕수는 다시금 언성이 높아졌다. “물론 기분이야 나쁘지. 제발로 걸어와서 보험 드시라고 하고는 생명보험을 들겠다고 하니까 나이가 많아 안된다고 하니.” “지금 평균수명이 70을 넘었다구. 예로부터 인명은 재천이라 했어.” “맞는 말이야 생명이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지 그렇지만.” “그렇지만이라니?” “노력은 해야지 건강관리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게 아니야. 아무도 제 목숨을 어쩔 수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젊은 여자가 건방지게 된다 안된다 아느냐 그 말이지.”
창수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났다. 어느새 하늘에 뭉게구름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여봐! 소낙비가 한바탕 오려나 보네!” 덕수는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중얼대듯 말했다. 두 사람은 긴 나무의자에서 일어섰다. “자네 지금 하늘 보고 소나기 올거라 했지?” 창수가 말을 걸었다.
“보라구 소낙비가 올 것 같지 않아?” “마찬가지야. 보험회사 여사무원이 우리를 보고 생명보험 말구 다른 것 들라고 하는거나.” 덕수는 창수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물었다. “여봐! 자네야 말로 그 둘러대는 버릇 좀 버리게나.” “둘러대는 게 아니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 뿐이야.” “그럼 솔직히 말해서 자네는 앞으로 얼마 못 살거 같으니 생명보험에는 들 수가 없다고 했을 때 기분이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
“언제 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어? 규정상 연세가 안되시겠다고 했지.” “그 말이 그 말이지.” 찬바람이 또 불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빠른 걸음으로 공원문을 나섰다. “여봐 덕수! 인명은 재천이라며?” “그러니까.” “생명은 우리 사람의 능력 밖의 문제라는 말이 아니겠어?” “그러니까.” “뭐가 그러니까야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솔직하게 시인을 해야지.” “그러니까 결국은 나더러 하나님을 믿으라 그 말이지?”
창수는 눈웃음을 지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덕수도 눈웃음을 지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기어코 오는군! 자 뛰세!” 덕수가 뛰었다. 그러자 창수도 그 뒤를 따라 뛰었다. “60이니 70이니 하며 큰소리 치더니 소낙비에는 꼼짝도 못하는군.” 창수는 소리내어 웃으면서 뛰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