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박 목사님! 목사가 박사보다 나은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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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구포 출신 노진현(1904-1998) 목사님은 일본에서 신학공부 하시고 광복과 함께 귀국하시어 부산에서 중앙교회(뒤에 새중앙교회 현재 호산나교회)를 개척하셨다. 일사각오 주기철(1979-1941) 목사님께 세례 받으시고 개혁주의 신앙과 신앙의 파수꾼으로 사셨다.

1958년 합동과 통합측 교단이 갈라지기전 마지막 총회장을 지내셨다. 자유주의 신학을 물리치고 신학과 신앙이 일치하는 교단은 뭉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기도와 믿음으로 평생 교단통합과 화합에 앞장서 일하신 어른 목사였다. 합동측 분란으로 새로 합신교단이 설립될 때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 3대 교육이념을 내걸고 교계 지도자의 한분인 박윤선(1905-1988) 목사님이 주도하신 장로교 합신교단 창립에 노진현 목사님도 헌신적으로 힘써 주셨다.

1980년 11월 창립된 합동신학교(뒤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학교건축에 크게 이바지하셨다. 새중앙교회 교인 중에 최삼금 권사가 자기 소유로 있는 서울 15평의 명동건물을 신학교 발전기금으로 바치게 권면했다. 그 명동건물 판매대금 16억을 학교건축 기금으로 하여 수원 원천동에 3층 학교 건물을 건축했다. 박윤선 목사님이 초대 교장으로 계실 때 최삼금 권사가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시고 지병으로 소천 후 합동신학교 재단이사장으로 노진현 목사님이 취임하셨다. 나는 이 무렵 박윤선 목사님 추천으로 합동신학교 교육분야 재단이사로 참여했다. 신덕이 높으신 노진현 목사님 모시고 많은 신앙인격을 배웠다. 1987년 최홍준 목사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주시고 화장실과 원로목사 집은 멀리 있는게 좋다고 성남시 분당 둘째 딸 노송희(서울 사랑의교회 권사) 댁에서 황봉애 사모님과 사셨다. 1998년 10월 15일 오전 5시 95세로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는 합신교단 1998년 가을 83회 총회가 성남 중원교회에서 열렸을 때 만난 노진현 목사님께 “모세처럼 120세는 꼭 사세요”라고 장수를 비는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해 모세 나이 15세 앞당겨 95세의 연세로 소천하신 것이다. 합동신학교 이사장직도 하나님 부르실 날이 가깝다고 그만 두시고 화성교회 장경재 목사님에게 이사장직을 넘겨 주시고 명예이사장으로 계셨다. 한국교회사 1백년에 큰 스승을 잃은 슬픔에 젖을 때 당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이시던 신복윤(1926-2016) 목사님은 자신에게 큰 산이시던 노진현 목사님 소천을 아쉬워하였으며 최홍준 호산나교회 담임목사는 아버지 같은 큰어른 목사님 청빈하게 사신 노진현 목사님을 깊이 추모했다.

1885년 2월에 소천하신 합동신학교 최삼금 이사장님 그의 고향 경남 양산 시온목장 한곳 하관 장례식을 다 마친 후에 근처 밭두렁 군데 군데 공간에서 도시락 점심을 나눌 때였다. 노진현 목사님이 도시락을 들고 점심 식사하시는 박윤선 목사(명예신학박사)님 앞에서 “박목사님, 목사가 박사보다 나은기라요, 박사는 축도권이 없어요”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농도 좀 섞인 말씀으로 박윤선 목사님을 바라보셨다. 그때 박윤선 목사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빙그레 웃으셨다. 목사, 박사 다 귀한 성직이요 학위다. 목사, 박사 그 우열은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영성교육을 하는 목사나 목사를 길러내는 신학교 교수 박사 함께 귀하게 봐야 하겠다. 문제는 교계를 흐리게 하는 가짜목사, 가짜박사는 깨끗이 청산되면 좋겠다. 교단이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 교육이념 실천으로 함께 기도하며 하나되는 평화의 교단 성령 충만한 교단이 되길 기도한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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