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滿 世紀 사용 논의는 없는가 –
정부는 6월부터 만(滿)나이 사용정책을 발표하였다. 그 이유는 국민들의 혼선과 갈등을 예방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하여 만 나이 제도를 6월 28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우리는 지인들과의 대화 중에 “나는 한국 나이로는…”하면서 우리의 나이를 알리는 경우, 왜 만으로 말하면 안되는가 하는 자문을 스스로에게 해 오고 있다.
이에 대한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의 의식구조에는 영(제로) 개념이 매우 희박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만일 할아버지가 손자 며느리가 낳은 아이가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보며 이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을 때에 아이 엄마가 “영살입니다”라고 대답한다면 할아버지는 “영 살이 뭐냐 한 살이지”했을 것이다.
이 예는 세기(世紀)를 이용할 때에도 적용된다. 서기 1년부터 99년사이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말할 때에 우리는 이들을 0세기가 아닌 1세기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1945년의 8.15 광복절이나 1950년의 6.25 전쟁을 아무 거리낌 없이 19세기가 아닌 20세기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0개념이 수학사에 도입된 경위는 멀리 선사시대(先史時代)까지 소급된다. 당시 인류는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과일을 따먹으며 생활을 했는데, 그러다가 그들은 숫자를 셀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어 가족이 3명일 때 물고기가 세 마리가 있으면 배불리 먹었는데 가족이 한 명 늘어나게 되면 물고기 4마리를 잡아야 했기에 이 경우 그들은 수를 점차 늘려나가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그 방법으로 그들은 수를 짝을 지어가며 늘려 나갔다. 예를 들어, 양 5마리와 돌멩이 5개가 있으면 서로 짝을 맞추어 보고 양이 5마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후 3만 년 전 인류는 뼈 조각이나 나무 조각에 빗금을 그으면서 늘려 나갔고, 그들 중 영리한 사람은 자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이용하여 수를 세어 나갔다.
수학사를 보면 오늘의 1, 2, 3 이라는 숫자 외에 0을 추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래 숫자 영(0)의 도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사작되었을 만큼 오래 되었다. 숫자 영은 인도/아라비아 숫자 ‘1, 2, 3, … 9’가 생기고도 오랜 후에 발명되었다. 0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0은 항상 무언가가 있다가 없어졌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개념인데 0이 출현하면서 10, 100, 1,000과 같은 큰 수를 나타낼 수 있게 되었고 0의 이점은 그 외에도 0은 어떤 수에 더해지더라도 그 수는 그대로 있고 만일 0이 어떤 수와 곱해질 때에 그 결과는 0이 되어버린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수학사에서 0은 인도에서 유래되어 그 후 7세기에 페르시아가 인도의 영개념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 후 아랍인들이 페르시아로부터 0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영’ 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13세기의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는 사람들에게 0의 개념이 얼마나 유익한지를 설명하려 했으나 그들은 그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제는 0개념이 전혀 문제 없이 현대사에 적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0개념은 세기(世紀)를 말할 때에는 아직도 0개념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아연 실색케 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1945년의 8.15 광복절이나 1950년의 6.25 전쟁은 19세기가 아닌 20세기의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 인식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서기 1년부터 99년사이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말할 때에 우리는 이들 사건을 0세기가 아닌 1세기 사건으로 부르겠다는 뜻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초대교회 당시, 교회는 0을 사탄의 수라고 했다 한다. 그 이유는 0은 어떤 수와도 곱해지면 無(없음)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영은 사탄의 수이자 악마의 수라고도 했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제부터 우리는 나이를 만으로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世忌의 호칭은 아직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만일 이를 개정하려면 이 문제를 다루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지 애매하다. 만일 이 문제가 역사학자들의 소관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굳이 그 문제를 개정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두고 볼 일이다.
오형재 장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신장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