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파(靑鹿派) 시인 박목월(朴木月, 1916~1978)과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은 친구이다. 박목월이 네 살 위다. 조지훈이 20대 초반 젊은 시절, 박목월을 경주로 찾아가서 보름동안 머물면서 박목월과 함께 경주 안강읍(安康邑)에 위치한 자옥산(紫玉山) 기슭 옥산서원(玉山書院)에서 지내게 된다.
경주 여행을 마치고 경북 영양군(英陽郡) 주실 마을로 돌아간 지훈은 『완화삼(玩花衫)』이란 시를 써 “목월에게”라는 부제(副題)를 달아 경주로 보낸다. ‘완화삼’이란 “玩: 희롱할 완/ 花: 꽃 화/ 衫: 적삼 삼”으로 직역하면 “꽃을 희롱하는 선비의 적삼”이란 뜻인데 이를 풀어 말하면 “꽃을 즐겨 구경하는 선비”를 말한다. 다음은 『완화삼』이란 제목의 시의 전문이다.
“차운산 바위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목월은 지훈에게서 ‘완화삼’이란 시를 받고 바로 엎드려 『나그네』란 시를 쓴다. 그는 이 시의 표제 옆에 ‘지훈에게’라는 부제를 달아 이를 지훈의 집이 있는 경북 영양의 주실 마을로 올려 보낸다. 이 두 사람은 ‘지훈’과 ‘목월’이라는 아호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어서 그들의 본명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 지훈의 본명은 ‘동탁(東卓)’이고 목월의 본명은 ‘영종(泳鍾)’이다. 다음은 목월의 시 『나그네』의 전문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ㅡ 지훈에게.” 이렇게 두 친구 사이에 『완화삼』과 『나그네』란 시가 탄생한 것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꽃[花]’과 같은 친구, ‘저울[衡]’과 같은 친구, ‘산(山)’과 같은 친구가 그것이다. 꽃과 같은 친구는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지 않고, 저울과 같은 친구는 이익을 먼저 따져 무거운 쪽으로 기운다고 한다. 그런데 산과 같은 친구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고 한결같은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 촉망받는 시인 두 사람이 문단에 나란히 얼굴을 내밀었다. 1939년 잡지 《문장》을 통해 데뷔한 ‘박목월’과 이듬해(1940) 같은 잡지를 통해 시단에 나온 ‘조지훈’이었다. 일본의 한국어 말살정책으로 모든 신문과 잡지들이 문을 닫던 때라 잡지 《문장》도 곧 강제 폐간되고 만다. 지훈은 혜화전문(惠化專門, 現동국대학의 前身)을 졸업하고 오대산 월정사(月精寺)로 들어갔고, 목월은 고향 경주에 머물며 금융조합 서기 일을 했다.
1941년 겨울, 지훈은 서울로 돌아왔다. 이듬해 봄, 지훈은 옛날 잡지에 실린 주소를 확인해 목월에게 편지를 썼다. “근황이 궁금하오, 얼굴 한번 보고 싶소”라는 내용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지훈에게 며칠 뒤 뜻밖에 목월의 답장이 닿았다. “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했는데 마음속의 님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
1942년 이른 봄날 해질녘의 경주의 건천역(乾川驛)ㅡ 목월은 한지(韓紙)에 ‘박목월’이라고 자기 이름을 써서 치켜들고 기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차가 역으로 들어와 멈추자, 시골 아낙네 서넛과 촌로(村老) 두엇이 플랫폼에 내렸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내려선 사내, 훤칠한 키에 긴 머리가 밤물결처럼 출렁거리던 신사, 그가 조지훈이었다. 목월은 자기 이름을 적은 피켓을 높게 흔들었다. 단박에 서로 알아본 두 청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얼싸 안았다. 그때 목월은 스물여섯, 지훈은 스물 둘이었다.
목월은 미션스쿨인 대구 계성중학교(5년제)를 졸업하였고 모친이 권사님이었던 영향으로 그의 작품에는 종종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이던 62세 때, 그러니까 1978년 1월, 원효로 《효동교회》에서 장로로 장립(將立)받은 기록이 나온다. 대조적으로 지훈은 평생 불교에 심취(心醉)했던 분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적 노선이 달랐던 이 두 어른에게서 믿는 이들도 흠모할만한 ‘신실한 우정’을 발견하게 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