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 구역에서 성지순례를 계획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이 여행에는 꼭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늘 해보고 싶은 여행인 데다가 우리 교회 목사님의 인도로 교회 성도들과 함께하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과 아테네!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을 받치고 있는 두 기둥인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본고장이 아닌가? 세상의 변방 작은 도시 예루살렘에서 한 인물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시작한 기독교 운동이 바울이라는 또 다른 인물의 열정에 찬 전도 여행으로 아테네를 거쳐 당대 최고의 도시 로마까지 이르러 드디어는 서구 세계 전체를 복음화하는 출발점이 된 두 도시를 동시에 여행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신앙의 여정일 뿐 아니라, 서구 문명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역사기행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출발하였다.
과연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여행이었다. 첫날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가이사랴 유적지, 갈멜수도원, 므깃도 유적지를 돌아본 다음, 다음 날부터 나사렛, 가나를 거쳐 갈릴리 북쪽의 단과 가이사랴 빌립보를 지난 다음, 갈릴리호숫가에서 가버나움, 팔복산, 오병이어기념교회, 베드로 수위권교회를 차례로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눈과 발로 따라가는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다음 날에는 갈릴리 호수를 떠나 요단계곡을 따라 내려가 예수님의 세례터로 시작하여 여리고와 시험산을 지나 유대광야를 가파르게 올라가니 올리브 나무들이 무성한 예루살렘 전경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감람산에 있는 예수님 승천교회, 주기도문교회, 눈물교회를 거쳐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서는 기드론 골짜기 너머 눈 앞에 펼쳐지는 예루살렘성전을 바라보면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떠올렸다.
예루살렘에서 다윗성, 히스기야터널, 마가의 다락방, 통곡의 벽을 차례로 돌아보았지만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십자가의 길 체험이었다.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약 800여 미터의 길을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라고 부른다. 일행이 모두 잠깐씩 십자가를 지는 체험을 하면서 찬송과 함께 묵상하며 걷는 이 길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꾼 현장이라는 감동이 여행 내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점령지라는 사실을 확인하듯 성문 곳곳에서 무장군인들의 삼엄한 경계가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
아랍인 지역에 있는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를 방문하면서도 예수님이 세상에 평화를 위해 오셨지만 아직도 세상은 전쟁과 반목과 갈등으로 얼룩져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 바로 앞에 서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건물이 무언가 말하는 듯하였다.
이스라엘을 뒤로 하고 데살로니키에 도착해서는 사도바울이 처음 유럽에 발을 디딘 네압볼리에서 시작해서 빌립보, 루디아 기념교회, 암비볼리를 거쳐 메테오라 수도원 부근에서 일박한 다음 날 드디어 유럽 문명의 심장부 아테네에 입성하였다. 과연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신전은 서양문명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었다. 아테네가 이 여행의 대미였다면 마지막으로 방문한 고린도는 그 여운이었다고 할까.
예루살렘과 아테네, 신앙과 철학의 만남을 온몸으로 체험한 여행이었다. 그동안의 여정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감격을 삶과 믿음으로 녹여내는 것이 이제부터 할 일이 아닐까 한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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