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꾸만 후회스러웠던 일들이 기억난다. 아내는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한다. 아내다운 후회다. 나는 아내가 후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후회를 한다. 부끄럽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후회들이 너무 많다. 종종 베드로를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베드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얼마나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인가?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시고 안나스와 가야바의 집 뜰에서 고초를 당하시는 상황에서 곤경을 모면하려 거짓말을 했다. 그 순간을 벗어나려고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 했다. 예수는 지난 3년여 동안 자신을 제자로 삼아주셨고 그는 예수를 따르며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그 베드로는 어디 가고 거짓과 외면으로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것이 후일 베드로의 후회다. 새벽녘 닭 우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럽고 비겁한 행동이었는지 후회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평생 죽는 날까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다가 죽었다. 그것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가 순교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더 후회할 일은 하지 않고 살고 싶다. 남은 시간은 후회보다는 잘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만나셨을 때에 베드로에게 물으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물음에는 베드로에 대한 섭섭함과 책망하고 싶은 마음도 숨겨져 있었으리라.
왜 나를 모른다했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화법이 놀랍다. 베드로에 대한 여전한 신뢰였을까 아니면 그를 배려하고 싶은 마지막 마음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주님은 그날 갈릴리에서 분명 베드로를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배반과 용서의 만남이다.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만난다. 나도 주님 앞에서 그렇게 용서받으며 살아왔고 그 용서의 사랑이 지금 나섬의 목회를 있게 했다. 나그네로 온 이들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나섬의 사역은 주님의 용서에 대한 나의 고백이다. 다시 당신의 양을 치라하시는 말씀에 대한 고백이다. 참으로 감격스럽고 감사하며 고맙고 죄송하다. 평생 후회하고 살았을 존재에 대한 용서하심과 다시 부르시는 그 부르심이 감사하다. 남은 삶은 그래서 감사하고, 죽는 날까지 더 열정적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하리라. 오늘도 후회하는 나를 용서하시는 그 분 앞에 감사할 뿐이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