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킬링 구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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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워드 테일, 엔젤 훠시, 키싱 구라미, 세 종류의 열대어가 끼리끼리 떼를 지어 수초 사이를 빠져나와 두 주먹 크기 만한 산호를 감돌 때면 바라보던 마음도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는 한가로움을 느끼게 한다. 이중에서 모양새가 특이하기로 뭐니 뭐니 해도 엔젤 훠시일 것이다. 하도 몸집이 얇고 납작해서 저 안에 도대체 등뼈다 갈비다 그리고 심장과 간이 들어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하니 도대체 생명이라는 게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가 없다. 스워드 테일은 그렇지가 않다. 흔히 볼 수 있는 피라미 새끼 같아 친근감은 있으나 유달리도 진한 빨간 색깔이라서 어쩐지 쉽사리 가까이 할 수 없도록 이질감을 가져다준다.

이에 비하면 키싱 구라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마음 가볍게 바라다볼 수 있는 고기다. 몸의 생김새부터가 붕어와 닮은 데다가 연한 분홍색을 하고 있어서 순진한 시골 총각 같아 호감이 간다. 게다가 때때로 등지느러미의 가시를  꼿꼿하게 일으켜 세우며 서로가 입을 맞대고 있는 모양이 어린애들하고 함께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야하다.

순호는 <관상어 입문>이라는 책에 적혀 있는 대로 하루 두 번씩 먹이를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항으로 가까이 가기만 해도 스워드 테일과 엔젤 훠시가 몰려온다. 그러나 키싱 구라미는 겁이 나서인지 아니면 동작이 둔해서인지 서성거리다가 늘상 먹이를 다 빼앗기고 만다. 그렇다고 따로 먹이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순호는 다른 때와 같이 오늘도 자정뉴스를 보고나서 어항 속의 고기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자리에 누웠다가 눈을 뜬 것이 새벽 4시가 좀 못되어서였다.

순호는 잠 못 자게 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아내 몰래 빠져 나와 소파 옆에 놓여 있는 어항으로 갔다.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으로 희미하게나마 어항 속이 보였지만 스워드 테일이나 키싱 구라미는 보이지가 않았다. 순호는 무심코 한 마리 두 마리 수를 세었다. 우선 마리 수가 적은 키싱 구라미를 세고 다음에 비교적 드세지 않은 엔젤 훠시를 세었다. 

‘열 마리?’ 틀림없이 정신차려 잘 세었는데 열 마리인 것이다. 순호는 다시 세었다. 역시 열 마리 뿐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산호 틈바구니와 밑을 자리를 옮겨가면서 샅샅이 찾아보았다. 한 마리의 스워드 테일이 산호틈에 끼어 있었다. 그렇게도 진한 빨간색이 바래서 희어진 몸집이 뜯기어 낡은 천처럼 너불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곧바로 그 소행이 어느 놈의 짓인지를 알았다. 당장 보고 있는 앞에서 잽싸게 한 마리의 키싱 구라미가 산호 틈에 박혀 있는 스워드 테일의 몸을 한입 가득히 물어 뜯어 냈기 때문이다.

“너 너 이놈! 이 위선자!” 순호는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으르렁 거렸다. “아니 주무시다말고 웬일이세요. 도대체?” 놀래서 뛰쳐나온 아내의 목소리였다. “글쎄 이럴 수가! 이놈의 키싱인지 킬링인지가 이 빨간 고기를 잡아 먹었다니까!” “네! 잡아 먹어요?”

잠시 서로가 할 말을 잊고 있었다. 이날 즉시 키싱 구라미를 다른 어항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킬링 구라미라고 개명을 했다. 그리고는 그 까닭을 순호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들려 주었다.

“키스하는 게 아니에요. 자세히 보세요. 입맞출 때 등의 지느러미를 보세요. 가시가 날카롭게 일어서지요? 입 맞추는게 아니에요. 물어뜯으려는 싸움이에요. 점잖다고요? 천만의 말씀! 죽여서 뜯어 먹는 놈인데 그게 인자한 거에요? 잘못 보았어요. 속은 거에요. 이놈은 위선자에요. 양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란 말이에요!”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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