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 9절은 아담이 하나님께 처음으로 죄를 짓는 현장을 그리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이는 본인 스스로 지은 죄를 알고 이를 뉘우치고 고백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리고 아담은 비록 하와가 권해서 죄를 짓게 되었다는 변명은 하였으나 자신의 잘못은 고백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시지 않고, 다만 ‘네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느냐?’ 그리고 ‘네가 있는 곳이 과연 올바른 곳이냐?’ 더 나아가 ‘네가 한 행위가 정당한 일인가?’를 묻는 말이기 때문이다.
중학생 시절에 성경을 배우면서 느꼈던 첫 번째 질문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시험하셨는가를 따지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성경에 나오는 여러 기적이나, 때로는 나의 단순한 상식이나 식견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을 그대로 믿기에 벅찰 때도 있었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지 않는 친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 구절을 들이대며 이론적인 항거를 할 때면, “너도 그냥 믿고 순종하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들이, 우리가 흔히 아는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따져 물으면 대답할 형편이 아니었다. 다만 구약시대로부터 이어오는 신앙이, 때로는 현대 과학으로도 충분하게 이해가 된다는 여러 석학들의 결론이, 내가 편안하게 믿을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얻은 결론은 욥기 4장 7절에서 나온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냐?’는 말씀처럼, 죄 있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는 말씀인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는 그를 힐책하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아직 관계가 끝나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뜻이라 여겨진다. 아직은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따라서 연결되어있는 끈을 끊지 말고 어서 속히 대답하고,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으라는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자마자, 인간은 곧 악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약자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영혼을 지녔지만, 하나님은 어떻게든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해주시려고 필요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 예수를 믿고,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죄의 유혹에 빠져 계속해서 범죄할 수밖에 없음도 잘 알고 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가능하면,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죄를 짓지 않아야 하지만, 범죄했을 때에는 곧 이를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기를 다짐하는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담아 너는 내 안에, 나는 네 안에 있어야 한다. 너를 가슴 깊이 사랑하는 내 사랑을 끊어버릴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는 소리에 숨을 생각을 하기 전에 ‘예, 제가 여기에서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