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의 종소리] 라멕의 시대 에녹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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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뉴스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끔찍한 살인이며 그 살인이 대개 가족에서 일어나는 살인이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이유없이 자신안에 있는 미움으로 죽인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경에서도 가인의 후손들의 모습은 더 큰 분노와 살인과 폭력으로 확대된다. 비록 타락한 상태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창의적인 능력으로 최초의 금속 기술, 최초의 악기 등의 문화의 발전은 이루어진다. 인간이 가진 위대한 능력이 문화로 나타나는 모습이지만 하나님 없는 인간의 문화의 모습은 교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타락한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인간을 높이는 반역의 모습이 나타난다. 

가인의 후손 중 라멕은 가인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가인의 후손 라멕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는 그가 자신의 아내들에게 한 말에서 나타난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자를 죽이고, 자신은 복수를 77배 한다는 것을 아내들에게 자랑한다. 라멕의 ‘아내들’이 ‘아다’와 ‘씰라’라고 나오는데 일부다처제가 등장한다. 가인의 후손들에게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떠나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회의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으로서 라멕의 시대이다. 

반면 아벨의 후손 중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깊은 밤에 별이 더 빛나듯이 에녹의 삶은 계속 죽음으로 끝나는 많은 사람들을 배경으로 더욱 빛이 난다. 에녹은 평균 900년대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땅에서 365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365세에 데려가신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에녹의 아버지와 에녹의 아들은 800년 이상을 살았기에 에녹은 그 절반도 안되어 데려가셨다. 당시 평균 수명의 절반이니 오늘날에는 인생의 중반에 데려가신 것이다. 그런데 에녹의 삶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평가가 있었다. 그냥 단순히 “살았다”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고 하였다. 에녹은 타락이전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것처럼 동행하며 살았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동행하며 경외하는 사람이 떠나는 신비를 하나님께서 에녹의 승천을 통하여 당대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오래 사는 것인가가 중요하다. 인생의 길이보다 의미가 더 중요하다. 그 의미는 하나님과 얼마나 동행한 인생이었는가이다. 교회를 얼마나 출석하였는가는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하나님과 얼마나 동행하였는가가 올바른 질문이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는 인생이었는가이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한 계기는 므두셀라의 출생을 통한 심판의 계시를 받은 것이다. 그렇게 심판을 의식하고 심판을 예언하며 살던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 들림을 받아 죽음을 보지 않았다. 모두가 죽는데 죽지 않을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사람이다. 죽지 않은 에녹은 심판의 계시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은 세상에 내려진 심판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이미 세상에 내려져 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더 훌륭한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건짐 받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셨고 그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는 약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셨음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한다. 이 시대에도 심판의 계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한다. 라멕의 시대에 에녹은 어디 있는가? 

이재훈 목사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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