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는 한때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한국교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집단이다. 구원파의 원래 명칭은 기독교복음침례회이다. 특별히 한국의 정통교회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또 공격하며 자신들의 특수성을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교회에 크게 피해를 주었던 이단집단이다. 구원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교주 권신찬), 대한예수교침례회(교주 이요한/본명 이복칠), 대한예수교침례회(교주 박옥수) 등 3개의 분파로 갈라져 활동했는데 박옥수와 이요한이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구원파로 널리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를 창설한 교주 권신찬씨는 1951년 7월 총회신학교(남산)를 졸업, 1951년 11월 31일 목사안수를 받고 1962년 12월 21일까지 11년에 걸쳐 여러 곳을 다니며 목회했다. 1961년 1월부터 대구장로회 신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신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늘 교리적인 문제 때문에 고심하던 중 1961년 10월 어느 날 네덜란드 출신의 길기수(Gase Glass) 선교사의 설교를 듣다가 “여러분 거듭났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자신의 설교가 영혼의 각성과 구원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 후 1962년 12월 21일 경북노회에서 목사직을 제명 받았는데 장로교 목사로서 장로교 교리와 다른 네덜란드 길기수 선교사로부터 침례를 받고 난 뒤 장로교 교리와 다른 교리주장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권신찬의 사위인 유병언씨는 미국의 독립선교사 딕 욕(Dick York) 선교사의 집회를 통해 회심했다고 한다.
권신찬과 유병언은 1963년 독립선교사들과 인연을 끊고 자신들의 전도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66년 국제복음주의방송(현 극동방송)에서 방송목사로 시무하기도 했다. 기성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당시 국제복음주의방송의 이름으로 개최되었던 수차례의 전도 집회를 통해 구원파로 넘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1974년 제95회 예장 합동 측 정기노회에서는 전국교회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국제복음주의방송국(극동방송)에 대해 항의하고 본 교단의 교역자들은 이 방송에 가서 설교하지 않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이 방송국에 대한 정체를 확실하게 밝혀줄 것을 총회에 건의한바 있었다.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보다 ‘구원파’라고 더 알려진 이 집단은 1981년 12월 21일자로 처음의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당초의 이름을 버리고 지금의 기독교복음침례회로 명칭을 바꾸고 당시 총회장에 대전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변우섭씨가 선출되어 이 집단을 이끌었다.
이 집단에서는 반드시 구원 받은 것에 확신을 가져야 하며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받고 깨달으면 죄를 지어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며 생활 속에 짓는 죄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한번 깨달음을 얻은 자는 죄가 없으므로 매일 회개할 필요가 없다며 육신적으로 거짓말해도 구원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기도했으나 이제는 죽었으니 기도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새벽기도회가 필요가 없고 시간들을 내어서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특별히 구원받은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교육을 시킨다.
예배의 제도에 있어서 기성교회의 성직자(목사)를 인정하지 아니하며 교회나 간판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성수주일을 할 필요가 없고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를 안다녀도 괜찮다며 구원파 외에는 구원 없는 죽은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던 교주 권신찬씨는 1994년 사망했다. 본 교단에서는 1974년 제59회 총회와 1983년 제68회 총회, 1992년 제77회 총회 등 3회에 걸쳐 이단으로 규정했다.
심영식 장로
<태릉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