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하고 있어?” “당신!” “뭘? 왜 그러구 서 있느냐구?” “당신 아버님이 용돈 받으시는 손 보셨지요?” “보았지… 그런데.”
미자는 입을 다물고 말꼬리를 올리는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다보았다. 좀 시간이 늦었지만 주무시기 전에 아버님께 매월 드리는 용돈을 드리기 위해 인천으로 찾아 갔었다.
“아버님!”
매월 20일이면 꼭 드려오던 것이라서 용돈이란 말은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돈봉투만을 내밀었다. 처음 몇 달은 펄쩍 뛰면서 무슨 용돈이냐고 야단을 치셨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는 ‘용돈은 무슨 용돈이냐 쓸데가 많을 텐데…’ 하면서 마지못해 받아오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힘없이 머리만 끄덕이면서 쓸쓸히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용돈을 받으신 것이다.
“아버지 손이 어째서?” “아버지 손이 어째셨다는게 아니라요 당신도 참…”
미자는 직장일 밖에 모르는 고지식한 남편이 딱하기만 했다.
“생각해 봐요. 갑자기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받으시는 아버님의 손을요.” 그제서야 알아차렸는지 말없이 방바닥만 내려다보던 남편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아버님은 여러 척의 어선을 갖고 있는 선주였다. 그래서 먼 바다로 배가 나가면 며칠이고 간에 배가 돌아올 때까지는 남모를 번민 속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만선이라는 소식과 함께 어항에 배가 들어오면 온통 집안은 축제로 들뜨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보름마다 물때를 맞추어 출항하는 어선이 옛날과 달라서 늘어나는 고기잡이 사람들로 만선이 그다지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민수 어멈아 나 좀 보자꾸나.”
미자는 시아버님께서 무엇 때문에 보자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방안에는 시어머니가 함께 계셨다.
“봉급생활에 고생이 많은 줄 안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냐.” 말하면서 시아버지는 두툼한 돈봉투를 미자 앞에다 내놓았다.
“아버님 저희들 봉급으로도 충분해요. 살림은 어렵지가 않아요.”
“어렵지가 않긴! 쓸 걸 안 쓰고 사니까 그렇지!” 시어머니가 한마디를 거들었다.
“네 고맙습니다.” 아무리 수입이 큰 어업이라 하더라도 둘째로 살림을 나서 처자식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부모로부터 받기만 한다는 건 퍽이나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나 그러한 심정이 오래 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큰아들이 보다 큰 어선으로 새로운 장비를 갖춰야만 생존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주장에 아버지도 더는 고집을 할 수가 없어 그럼 그렇게 하자고 허락을 했던 것이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으로 유류파동이 일고 덩달아 인건비가 치솟기 시작을 했던 것이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어부는 늘고 고기씨가 말라가는 판에 배만 크고 장비만 좋으면 뭘 해?” “아버지 좀 두고 보세요. 국제사회에서 제멋대로 석유값을 올린다고 해서 그게 엿장사 마음대로 될 것 같아요?” “당장 기름값이 올랐는데 엿장사는 무슨 엿장사야!”
“글쎄 얼마 안가서 유류값이 내릴거라 그 말씀입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