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카페를 들렀는데, 한 젊은 아빠가 어린 딸과 함께 들어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의 투정이 시작되고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 아이의 울음과 투정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았고, 아빠의 소리도 높습니다. 차를 마시고 문을 나서는데, 아버지와 딸이 아직 출입문 바로 밖에서 마음으로 줄다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빠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잘못한 것을 아는 거야!” 계속 묻습니다. 아빠는 떼를 쓰는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 징징대며 울고 있습니다. 제가 가만히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아이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저 아버지가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일까?’
물론, 저는 아빠가 좀 더 많이 딸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 전능자, 가장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영원한 아빠 아버지, 나의 하나님은 세상의 아빠와는 다릅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나의 하나님, 그분의 뜻은 완전합니다. 후회함이 없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영원히 있는 말씀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문제점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어느 정도는 감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의 그 마음을 너무나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 같습니까?
오늘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의 그 마음이 명확하고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온통 세상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말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혹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아니, 세상은 죄악의 도상인데, 세상은 멀리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함을 지켜야 맞지? 그렇게 생각하실 것도 같습니다. 이 말씀이 그런 의미,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요.
로마서 5장 8절 말씀이면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속한, 이 세상,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명확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건져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친히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인 나를 세상 가운데로 보내시는 주님의 마음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세상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에 바르게 응답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교회 문밖에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열려야 합니다.
그리고 문밖에서 더욱 신실한 교회(성도)여야 합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증인 되어야 합니다. 이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면 교회가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세상을 살리는 강력한 복음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건강한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숨 막히는 세상에 숨 쉬게 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1~2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주님의 숨은 생명의 숨결입니다. 살려내시는 성령님의 숨결입니다.
그 숨은 헛바람이 아니라 영원한 바람입니다. 주님의 그 생명의 숨결로 우리도 숨 쉬며, 세상을 숨 쉬게 하는 교회가 됩시다. 아버지의 마음, 세상을 살리는 교회의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곽금배 목사
<구미하늘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