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은 “내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칼뱅은 제네바의 공동묘지 후미진 곳에 비석도 없는 무덤에 묻혔다. 칼뱅은 죽은 후에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으로 오는 것조차도 우상숭배가 될까 염려하였다. 그는 이름 없는 무덤으로 남기를 진정으로 원했다. 그는 평생 삶의 모토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 칼뱅은 그의 종교개혁을 주선하였던 목사 파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러나 제 자신의 주인이 제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저는 제 심장을 도려내어 희생 제물로 주님께 바칩니다.” 그는 그렇게 제물이 되어 종교개혁을 성취하였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다.
칼뱅의 후예라는 오늘날 장로교는 어떤가? 한국 장로교의 지도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사는가? 후원회를 부추기고 제 돈 들여서 기념관을 세우는 목사들이 있다. 교회에서 평생 수고하고 일한 것을 업적으로 남기고 후대에 자랑하려는 장로들이 있다. 비석 한 개가 모자랄 정도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려는 지도자들이 있다. 자기의 이름 석자 때문에, 교계의 자리를 탐하여 싸우고 투기하고 모함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교회의 직분이 계급이 되고 있고, 이것을 쟁취하려는 욕심에 신앙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어 그 업적이나 자취를 생각해주고 세워주면 고맙게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으로 세워진 공적비나 기념관이 있다면 칼뱅이 꾸짖지는 않을까? 예수를 잘 믿지 못한 탓이다. 예수의 제자라고 따라다녔지만 바리새인의 제자처럼 살아온 결과이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고 찬송은 하였지만 말뿐인 공허한 고백이었다.
옛날 삼일운동을 거사하려던 33인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민족대표 이름을 넣는 순서가 문제였다. 천도교는 손병희를 먼저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독교는 기독교 지도자를 먼저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투었다. 이때 이승훈 선생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먼저 죽는 순서입니다. 손병희 선생 먼저 죽으세요. 그 다음 길선주 목사님입니다.” 이렇게 하여 좌중을 진정시키고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칼뱅처럼 인생의 목적이어야 한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한국교회는 죽어 가는데, 지도자들이 팔팔 살아서 비석 세우고, 이름을 내려고 한다. 지도자들이 죽어야 한국교회가 산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